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코로나19 관련 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코로나19 관련 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고용 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노사 모두가 공감한다. 문제는 사회적 대화의 장이 열리기도 전에 기싸움 차원에서 재계가 해고요건 완화를 요구하고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등으로 반격하는 ‘강(强)대강’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등 여당이 180석을 차지한 만큼 정부 여당이 악화한 노사관계의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노사정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사 모두 코로나19와 관련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북미·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영세자영업자나 서비스업은 물론 대기업·제조업 등의 정규직 일자리까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노동계에 임금 인상 자제 등 양보 교섭을 원하고 있고 노동계는 재계에 고용안정 등 총고용 보장을 바라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난달 6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 선언’ 이후 이행사항을 점검해야 하고 세부적인 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도 “현 상황 극복을 위해서 노사가 모여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의제개발·조정위원회에서 특별위원회 설치 방안이 논의된 바 있다.
하지만 사회적 교섭을 시작하기도 전에 노사가 상대를 자극하는 방안을 내면서 대화가 꼬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23일 ‘경제 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국회에 제출했다. △일반해고 도입(저성과자 해고) △경영상 해고요건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근로자 과반수 동의→노사 협의) 등이다.
노동계는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반기업적인 요구안을 대거 들고 나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 금지, 사회안전망 강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노동 3권 보장,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등은 물론 부유세 도입, 재벌 곳간을 열어 총고용보장기금 조성 등 재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까지 내놓았다. 또 이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만나 △금융지원을 받는 기업은 자사주 매입, 주주 배당을 하지 말 것 △금융지원액 상환 이후 2년간 외주화 등을 금지할 것 등의 요구안을 전달했다. 한국노총이 올해 중점 추진하고 있는 ‘5·1플랜(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1년 미만 근속자 퇴직급여 지급)’도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나오는 내용이다.
재계는 대승적 차원에서 노사정 대화에 나서자는 민주노총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일부 요구안은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내수와 수출 모든 부분에서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라며 “기업은 생존을 위해 사업이든 인력이든 일정 수준의 구조조정 과정이 있어야만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데도 무턱대고 ‘정부 정책 지원을 받으려면 해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사가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나의 극단이 움직이면 다른 극단이 반작용하는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고 사회적 대화도 불가능하다”며 “코로나19로 상황이 엄중한데 노사 행위자들은 이 기회에 이익을 더 얻겠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노사관계 전문가도 “일자리 지키기가 급선무가 된 상황에서 노동권을 추가 보장하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노동계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저항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뜬금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21대 총선에서 ‘슈퍼여당’이 탄생하면서 노사정 관계에서 정부의 책임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박 교수는 “지금부터 이뤄지는 모든 정책의 결과는 모두 정부 여당의 책임”이라며 “성과가 나지 못하면 실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의 관계자는 “양쪽의 고통을 서로 분담하는 자세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것이 사회 전체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변재현·이수민·변수연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