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한 대 이상으로 휴대폰과 휴대용 스마트기기 보급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문화 중 하나가 ‘셀피’다. 오늘의 내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혹은 SNS에 게시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는 일이다. 사진 보정기술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알아서 ‘예뻐 보이게’ 얼굴을 찍어주는 앱도 다양하게 개발됐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더 잘 알게 됐을까? 초상화를 그리는 저자가 쓴 에세이 ‘얼굴을 그리다’가 눈에 띄는 이유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로 책을 시작한 저자 정중원은 “우리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무엇일까”를 묻는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게 바로 ‘나의 얼굴’이라는 얘기로 저자는 불완전하고 수시로 왜곡되는 이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숱하게 많은 자화상을 그린 알브레히트 뒤러는 가장 완벽하고 자긍심 넘치는 자화상을 남긴 반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가죽 벗겨진 순교자 바돌로매의 얼굴이라는 흉측한 모습으로 자신의 작품 ‘최후의 심판’에 등장한다. 실력 좋은 화가가 남긴 자신의 얼굴은 얼마나 실제 얼굴과 흡사한지를 기준으로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광학기술이 발달했으니 촬영된 사진 이미지가 완벽할 것이라 믿을 수 있겠지만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촬영된 사진도 렌즈 초점 거리에 따라 다른 얼굴로 보인다. 그리하여 “자기 모습에 대한 호기심과 불확신, 기대와 불안은 계속됐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인간은 스스로의 복제상을 끝없이 생산하고 조작하며 공허한 환호와 절망을 반복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원래 ‘이미지’라는 것이 왜곡되기 쉬운데다 ‘얼굴 이미지’에는 복잡한 외부요인이 더 크게 작동한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로버트 솔소 박사는 얼굴을 보고 그리는 과정의 뇌 활동을 연구한 결과 오른쪽 후두엽이 활발한 일반인과 달리 전문 초상화가는 뇌 활동 영역이 오른쪽 후두엽에서 전두엽으로 옮겨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일반인은 얼굴을 그리는 내내 대상의 생김새를 읽어 내는 데 집중하지만 이미 기술적으로 숙련된 화가는 그리는 대상 자체에 더 몰두한다”고 짚었다.
저자는 사진보다 더 실제 같은 극사실주의 혹은 하이퍼리얼리즘이라 불리는 섬세한 기법으로 초상화를 그린다. 책은 촬영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굳이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에 대한 생각 깊은 대답과도 같다. 인물화라는 광활한 주제 아래 스스로 못생긴 외모를 자각했던 표암 강세황부터, 역사를 바꿔놓은 왕실 화가 한스 홀바인 등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례를 아우르고 있다. 1만9,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