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참혹한 현장" 공황장애 앓다가 극단적 선택한 소방관… 법원 “순직 인정”

유족, 인사혁신처 상대 행정소송 승소

서울행정법원 전경. /서울경제DB

참혹한 현장을 자주 목격하는 구급 업무를 오랜 기간 담당하다가 정신 질환을 얻고 끝내 극단적 선택에 이른 소방관이 순직으로 인정받게 됐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김국현 수석부장판사)는 숨진 소방관 A씨의 부인이 “순직 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며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질환 때문에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러 숨진 것으로 보인다”며 공무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소방관이었던 A씨는 2015년 4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수사에서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족은 A씨가 숨지기 직전 업무 때문에 고통받았다며 순직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인사혁신처는 ‘직무와 관련한 직접적 사망 계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유족은 행정소송을 냈고 이번에 승소했다.


재판부가 유족의 손을 들어준 것은 A씨가 23년의 소방관 경력 가운데 12년가량을 구급 업무를 담당하며 동료들이나 가족에게 고통을 토로했던 점이 주된 근거가 됐다.

A씨는 2010년 특히 많은 구급 업무를 했고, 한 해 동안 20회 이상 참혹한 현장에 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공무원 심신건강관리 종합대책에 따르면 소방관이 1년간 참혹한 현장에 노출되는 빈도는 평균 7.8회다.

A씨는 2010년부터 수면장애, 불안, 공포 증상을 호소하면서 정신과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 2014년까지 38회 공황장애 치료를 받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 진단을 받기도 했다.

동료들의 진술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승진하면서 구급 업무에서 벗어나게 돼 밝은 모습을 보였으나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6개월 만에 다시 구급 업무로 전보됐다.

특히 A씨는 자신을 구급 업무에 투입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부인에게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심적인 부담감과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공황장애 치료를 받는 사실이 직장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2014년께부터 거의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증상이 점점 심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A씨를 구급 업무로 복귀시킨 인사 지침은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갖고 있던 A씨가 앞으로도 계속 구급 업무에 투입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A씨는 6개월 만에 다시 구급 업무로 복귀돼 깊은 절망감에 빠졌던 것으로 보이고, 종종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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