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숙현 선수가 생전에 남긴 훈련일지. /SNS 캡쳐
상습적 폭행과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당시 23세) 선수가 사망 전 수년 동안 폭행 현장의 녹취록을 모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최 선수가 당한 구타 뿐 아니라 막말과 욕설 등의 정황도 담겨 공분을 사고 있다.
최 선수는 지난 26일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들은 최 선수가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에서 감독, 팀닥터, 일부 선배들에게 지속적으로 가혹행위와 괴롭힘 등을 당해왔다고 주장했다.
YTN이 공개한 최 선수의 폭행 당시 녹취록에 따르면 2019년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팀닥터는 최 선수에게 “이빨 깨물어 이리와 뒤로 돌아”, “나한테 두 번 맞았지? 너는 매일 맞아야 돼”, “욕먹어 그냥 안했으면 욕먹어” 등의 말을 하며 20분 넘게 폭행을 가했다.
이어 최 선수의 동료로 추정되는 선수를 불러 “너는 아무 죄가 없다. 이빨 깨물어”하는 말을 하고 신체 폭행을 계속했다. 감독과 팀닥터는 최 선수를 폭행하는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음주까지 했다.
감독은 최 선수를 때리던 팀닥터에게 “한잔 하시고 선생님. 제가 콩비지찌개 끓였습니다. 이거 다 녹습니다 선생님. 와인 저기 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을 건넸다. 둘은 음주를 하면서도 최 선수의 뺨을 20회 이상 때리고, 가슴과 배를 발로 차고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밀치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
감독은 울고 있는 최 선수에게 “짜지마. 짜지 말라고”라고 위협한 뒤 “아파? 닥터 선생님이 알아서 때리시는데 아파? 죽을래 나한테? 푸닥거리 할래? 죽을래?”라고 협박했다. 또 두려움에 찬 최 선수가 “아닙니다”라고 반복적으로 대답하는 음성도 담겼다.
고(故) 최숙현 선수 마지막 메시지. /이용 의원 제공
또 다른 녹취록에도 폭행은 이어졌다. 팀닥터는 “운동을 두 탕을 하고 밥을 한 끼도 안 먹고 왔는데 쪄 있잖아. 8.8일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했니?”라고 물었고, 최 선수는 “물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팀닥터는 “네 탓이잖아? 3일 굶자. 오케이? 잘못했을 때 굶고 책임지기로 했잖아?”라며 “이리 와, 이빨 깨물어. 야 커튼 쳐. 내일부터 너 꿍한 표정 보인다 하면 넌 가만 안 둔다, 알았어?”라며 찰싹 소리가 나게 계속해서 빰을 때렸다.
유족 측은 최 선수의 체중이 늘자 팀 관계자들이 빵 20만 원어치를 억지로 먹게 한 뒤 먹고 토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훈련일지에도 가혹 행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최 선수는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체중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하다’며 가혹행위 정황을 적었고, ‘차에 치이든, 강도가 찌르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수백 번 머릿속에 맴돈다’는 극단적 표현을 쓰기도 했다.
동료 선수에 따르면 일부 선배가 최 선수에게 ‘트렌스젠더를 닮았다’, ‘남자 많이 만났다’는 식으로 비하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서 일상이 어려운 수준까지 대인기피증이 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 선수의 훈련 일지에도 ‘오늘처럼 공황 온 날은 너무 힘들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고 최숙현 선수의 훈련일지. /YTN 방송화면 캡처
최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는 트라이애슬론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지낸 최 선수가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가혹행위 등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올해 초부터 감독, 팀닥터 등을 고소하고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진정을 넣는 등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최 선수의 좌절감은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 힘들어서 고소했는데 경찰 조사에서 애가 실망을 많이 했다. 피해자 측에서 수사를 해야 하는데 봐주기식 수사를 했고, 때릴 수도 있고 운동선수가 욕하는 건 다반사라는 식으로 수사했다”며 “팀을 옮기고, 지난 4월 스포츠인권센터에 이메일로 진정서를 넣었지만 동료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전화를 안 받아 성과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딸이) 자기는 8대1로 싸우는데 거기는 변호사 다 선임 다 하고 거짓말한다며 자기도 변호사 선임해야겠다고 했다”며 “2차 피해가 심각했고 너무 괴로워했다”고도 했다.
비판이 커지자 대한철인3종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스포츠 공정위심의에 따라 협회가 할 수 있는 빠르고 단호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도 1일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가 지난 4월8일 故 최숙현 선수로부터 폭력 신고를 접수했고 피해자의 연령과 성별을 감안, 여성 조사관을 배정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며“해당 사건은 대구지검 경주지청으로 송치됐다. 지난달 1일 대구지검으로 사건이 이첩돼 현재는 대구지검에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