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4일 독일 베를린시장과 미테구청장에게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방침 철회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서한문을 통해 “베를린시가 최근 한국과 독일 양국 시민들의 노력으로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철거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대한민국의 경기도민을 대표하는 경기도지사로서 우려를 표한다”며 “만일 소녀상이 철거된다면, 전쟁범죄와 성폭력의 야만적 역사를 교훈으로 남겨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염원하는 한국인과 전 세계의 양심적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인 평화의 소녀상은 이미 수개월 전 베를린시 도시공간문화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공공부지에 설립됐다”며 “당국의 (철거) 허가가, 일본의 노골적인 외교적 압력이 있고 난 뒤에 번복되는 것은 독일과 오랜 친선우호 관계를 맺어온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녀상의 머리칼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끊긴 인연을, 어깨 위의 작은 새는 결국 돌아오지 못한 영혼을, 소녀상 옆의 빈자리는 미래세대에 대한 약속을 나타낸다”면서 “일본은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이 반일 국수주의를 부추기는 도구라고 주장하지만 소녀상의 어떤 면을 반일주의나 국수주의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지사는 “많은 한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책임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임을 보여줬다”며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인권과 소녀상의 역사적 무게를 숙고해 귀 당국의 철거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미테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이 국제적인 전쟁 피해 여성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인정해 지난해 7월 설치를 허가했으나 지난달 말 제막식 이후 일본 측의 반발이 거세자 지난 7일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현지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에 이날까지 철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코리아협의회가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면서 철거는 일단 보류된 상태다. /윤종열기자 yjyun@sedaily.com
<다음은 이 지사 서한문 전문>
친애하는 미하엘 뮐러 베를린시장, 슈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베를린시가 최근 한-독 양국 시민들의 노력으로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철거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저는 대한민국의 경기도민을 대표하는 경기도지사로서 우려를 표합니다.
일단 14일까지의 철거 명령은 법원 절차로 인해 보류됐지만 베를린시와 미테구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한국의 국민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된다면, 전쟁범죄와 성폭력의 야만적 역사를 교훈으로 남겨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염원하는 한국인과 전 세계의 양심적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인 평화의 소녀상은 이미 수개월 전 베를린시 도시공간문화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공공부지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같은 당국의 허가가, 일본의 노골적인 외교적 압력이 있은 뒤에 번복되는 것은 독일과 오랜 친선우호 관계를 맺어온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은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이 반일 국수주의(nationalism)를 부추기는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포용과 자유의 정신이 살아있는 베를린에 걸맞지 않은 철거 공문에도 그러한 일본의 논리가 스며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한국인의 인식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서 보듯이 ‘개인의 청구권은 국가 간 합의로써 포기될 수 없다’는 것으로서 철저하게 국제인권법의 정신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소녀상을 꼭 한 번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소녀상의 머리칼은 거칠게 잘려나갔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끊긴 인연을 드러냅니다. 어깨 위의 작은 새는 결국 돌아오지 못한 영혼을 기리며, 소녀상 옆의 빈자리는 미래세대에 대한 약속을 나타냅니다. 소녀상의 어떤 면을 반일주의나 국수주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과거사를 진정으로 사죄하고 그 책임을 철저하고 지속적으로 이행하는 독일 정부와 국민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책임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물며 사죄하지도 않는 과거를 청산할 길은 없습니다.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인권과 소녀상의 역사적 무게를 숙고하여 귀 당국의 철거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전쟁범죄를 청산하고 동서분열을 극복한 평화의 도시 베를린에 항구적 평화가 깃들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경기도지사 이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