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빌라 밀집지역./서울경제DB
서울에서 다세대·연립 등 이른바 ‘빌라’의 매매 거래량이 아파트를 추월하는 현상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아파트 거래가 빌라보다 두 배 정도 많다. 거래역전은 물론 이 같은 현상이 수개월째 지속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규제 정책으로 아파트 수요를 제한해 거래절벽이 일어난데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난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왜곡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시장왜곡을 넘어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놓고 있다.
◇빌라, 아파트 거래 3개월째 추월=1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의 빌라 매매 거래량은 4,067건으로 아파트 매매 거래량(3,617건)을 앞섰다. 9월에도 빌라 거래량(4,005건)이 아파트(3,770건)보다 많았다. 이 같은 추세는 이달까지 석달째 이어져 16일 기준으로 빌라 거래량은 581건, 아파트 거래량은 355건을 기록하고 있다.
빌라 거래량이 아파트 거래를 웃도는 경우는 드물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달 이상 연속으로 거래량 역전이 일어난 경우는 이번을 포함해 단 세 차례에 그칠 정도다. 앞서 발생한 거래량 역전은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 1~5월과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다. 세 번 중 두 번이 이번 정부에서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아파트 구입이 어려워져서다. 이미 지난 2~3년간 노원·도봉·강북 등 서울 외곽까지 아파트 가격이 올라 40%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로는 대출을 받아도 아파트 가격을 조달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쏟아진 규제에 가격이 오르면서 서울의 아파트 장만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빌라’ 선택=반면 빌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아파트보다 가격 측면에서 접근이 쉬워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4,888건 이후 올 7월에는 오히려 7,299건으로 늘기도 했으며 현재도 월 4,000건대의 거래량이 유지되는 추세다. ‘6·17대책’에 따라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 아파트를 구입하면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단독주택이나 빌라는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여기에다 ‘이러다가는 서울에서 내 집 마련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빌라 매수에 나서는 수요도 꾸준하다. 7월 말부터 시행된 새 임대차법은 빌라 수요에 불을 붙였다. 수요가 늘면서 빌라 가격도 오르고 있다. KB 조사에 따르면 10월 서울 다세대·연립주택의 중간값인 중위 매매가는 2억7,383만원으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8년 12월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왜곡을 넘어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빌라 선호도가 높아졌다기보다는 각종 아파트 규제로 인해 빌라를 구매하고 있다. 이는 결국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아파트를 구매하는 일반적인 주거 사다리 대신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와 빌라의 가격 격차로 인해 점점 주거 사다리 위쪽으로 이동해나가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김흥록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