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순혈주의'도 버렸다…임원 100명 '아웃 칼바람'

■ 세대교체 닻올린 롯데그룹
컨설턴트 출신 50세 강성현 전무에 롯데마트 맡겨
35개 계열사 CEO 3분의 1 교체로 인적쇄신 가속
조직·직제 대폭 슬림화…젊은 인재 조기 승진 길 열어

‘롯데 신임 50대 CEO’ 황진구(왼쪽부터)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 내정자,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 내정자, 차우철 롯데지알에스 대표 내정자.

인사에서 보수적인 것으로 정평이 난 롯데그룹이 순혈주의도 버렸다. 롯데그룹이 롯데마트와 같은 핵심사업부의 최고경영자(CEO)로 외부 컨설턴트 출신의 50세 임원을 선임한 것으로 이번 인사의 ‘파격’을 확인할 수 있다.

롯데그룹은 올해 실적이 부진한 식품 사업의 부문(BU)장을 교체하는 등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50대 초반 임원들을 대거 대표로 배치하며 인적 쇄신을 꾀했다.

롯데그룹은 26일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열고 이영구 롯데칠성(005300)음료 대표이사를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식품BU장에 임명했다. 식품BU장은 지난 2018년 이후 2년 만에 교체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밥 수요가 늘면서 여타 식품 업계의 매출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반면 롯데 식품 계열사 실적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50대 초반의 젊은 임원을 다수 계열사의 대표로 기용했다는 점이다. 롯데네슬레 대표였던 강성현 전무의 발탁이 가장 파격적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그는 1970년생, 올해 50세로 롯데마트 사업부문장을 맡게 됐다. 전임 대표가 1962년생인 것을 고려하면 8세가 젊어졌다. 강 대표는 한국까르푸와 BCG(보스턴컨설팅그룹)를 거쳐 2009년 롯데에 합류했다. 에쓰오일 출신인 김종인 전 롯데마트 대표에 이어 외부 출신이 수장을 맡은 이례적인 경우다.


롯데칠성음료의 신임 대표로는 50세의 박윤기 경영전략부문장이 전무로 승진하며 내정됐다. 롯데푸드 대표에는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을 역임한 51세 이진성 부사장이,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이사에는 LC USA 대표이사였던 52세 황진구 부사장이 승진 내정됐다. 신임 롯데지알에스 대표이사에 내정된 차우철 롯데지주(004990) 경영개선팀장 전무와 롯데정보통신 대표이사로 보임하는 노준형 DT사업본부장 전무도 52세다.

계열사 대표와 주요 임원들의 교체도 이뤄졌다. 롯데는 이날 이영구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를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식품BU장에 임명했다. 이 신임 BU장은 1987년 롯데칠성음료에 입사해 롯데알미늄, 그룹 감사실 등을 거쳤고 2017년부터 롯데칠성음료 대표를 맡아왔다. 롯데지주에서는 커뮤니케이션실장에 고수찬 롯데건설 부사장이 승진 임명됐고 준법경영실장에는 검사 출신인 박은재 변호사가 부사장 직급으로 영입됐다. 롯데지주는 이로써 2년 새 6개실 수장을 모두 교체했다.

이밖에 롯데미래전략연구소에는 임병연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 부사장이, 부산롯데호텔 대표에는 서정곤 호텔롯데 국내영업본부장 전무가 내정됐다. LC USA 대표에는 손태운 전무가 승진 내정됐다. LC Titan 대표에는 박현철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생산본부장 전무, 롯데베르살리스 대표에는 황대식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안전환경부문장 상무가 각각 내정됐다. 롯데네슬레는 김태현 롯데칠성음료 글로벌본부장 상무가 대표를 맡는다. 해외 법인에서는 롯데제과 파키스탄 콜손 법인의 카얌 라즈풋 법인장이 새로 임원이 됐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임원을 지난해보다 20% 축소했다. 총 600여 명 임원 중 100명 넘게 줄어든 것이다. 실적 부진에서 탈출하기 위한 쇄신 작업인 만큼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해 임원 수의 대폭 조정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임원뿐만 아니라 롯데는 최근 주요 계열사 및 사업 부문의 구조조정을 통해 임직원 슬림화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자산개발·롯데하이마트·롯데월드 등 일부 계열사들이 희망퇴직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유통 부문을 중심으로 과장급까지 명예퇴직을 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비대해진 조직의 재점검을 통해 새로운 유통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쇄신 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울러 롯데는 가벼워진 조직이 빠르게 굴러갈 수 있게 임원 직제도 슬림화했다. 임원 직급 단계를 기존 6단계에서 5단계로 축소하고 직급별 승진 연한도 축소 또는 폐지했다. 신임 임원이 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 기존 13년이 걸렸지만 이번 직제 개편을 통해 승진 가능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다. 롯데그룹 측은 “직제 슬림화는 젊고 우수한 인재들이 조기에 CEO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롯데그룹이 큰 폭의 쇄신을 단행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롯데 주력 계열사의 실적이 고꾸라지면서 그룹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할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023530)은 올해 들어 3·4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46억 원으로 57.2% 급감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2·4분기 8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냈으며 식품 계열사들도 올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로 코로나19로 유통을 비롯한 전 계열사들이 치명타를 입자 신 회장이 강력한 쇄신을 주문한 결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보리·박민주 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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