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는커녕 갈등만 키운 '한걸음 모델'

지리산 자락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결국 결론 못내고 법 개정 않기로
리조트 설치 불가·궤도사업 불투명
일각 "애초부터 상생 개념과 안맞아
정부, 소모적 논쟁만 남기고 빠진셈"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리조트형 호텔을 짓고 산악 열차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가 사실상 좌초됐다. 정부가 사회적 타협 메커니즘이라는 ‘한걸음 모델’의 과제로 제시하며 중재에 나섰다가 슬쩍 뒤로 빠져버리면서 지역 갈등만 더 키운 모양새가 됐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환경 단체, 지역 주민,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한 ‘산림관광상생조정기구’는 약 6개월간의 논의를 통해 원안 폐기, 원안 추진, 보완 검토 등의 의견이 나왔으나 최종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종료했다. 또 관계 부처는 하동군이 제안한 ‘산지관리법’과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않기로 했다.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는 경남 하동군 화개·악양·청암 3개 면 일원에 무가선 열차(12㎞), 케이블카(3.6㎞), 모노레일(2.2㎞), 휴양 시설 등을 설치·운영하는 사업으로 지난 2014년부터 추진돼왔다. 총사업비 1,650억 원(민자 1,500억 원+지방비 150억 원)이 들어가며 국비 투입은 없다.

우선 법 개정이 불발됨에 따라 산 정상부에 리조트 등 대규모 위락 시설을 짓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현행 산지관리법에는 산 5부 능선 이상 중턱의 개발 자체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같은 이른바 ‘궤도 사업’은 애매모호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 개정 없이 (중턱 위까지 연결하는 것도) 추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동군 관계자도 “궤도 시설뿐 아니라 다양한 편의 시설도 계획했던 부분이 안된 것”이라며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산지관리법의 일시 사용 허가를 하면 표고 제한이 없어 개발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사업을 진행하는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 모델이 약해진다. 정상까지 모노레일 등으로 연결한다고 해도 간단한 정류장 외에 추가 시설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현행법상 국유림에서는 공공사업이 아닌 기타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국유림과 군유림을 교환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민간 건설사가 참여하는 민자 사업이어서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힘들다.

이로 인해 내부 위원들조차 상생하고 전혀 다른 개념이 왜 안건으로 올라왔느냐는 의문과 함께 애초부터 산림 관광이 ‘한걸음 모델’에 선정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개발을 원하는 지자체와 이에 반대하는 환경 단체가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기존과 똑같은 지자체 개발 방식을 갖고 상생을 논의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는 “시작이 잘못됐으니 합의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찬반만 나뉘었고 상생이라고 할 수 없어서 원점 재검토 결론이 났다”면서 “상생조정기구가 제 역할을 하려면 완전히 다른 개발 방식이거나 개발이 합의된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 이익과 손해를 조절하는 식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상생조정기구는 하동군이 향후 원점에서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갈등을 해결하도록 권고했다. 하동군은 당초 제안했던 법률 개정 없이 현행 법령 내에서 사업 계획을 축소·변경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경제적 타당성 및 환경 영향은 하동군의 사업 계획 확정 이후 공인된 기관의 평가 등 관련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쳐 판단할 계획이다.

이는 곧 중앙정부가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게 된 상태에서 ‘하동 알프스’를 놓고 수년 째 찬반으로 나뉜 갈등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 반달가슴곰 서식지, 지리산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환경 단체와 주민 등의 반발이 크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이날 마치 결과물이 나온 것같이 ‘논의 결과 도출’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중재도 못하고 결론도 내지 못한 채 갈등만 남겨 한걸음 모델이 아니라 헛걸음 모델”이라며 “지역은 소모적 논쟁과 갈등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한걸음 모델의 다른 과제인 도심 내국인 공유 숙박에 대해 최종 쟁점이 조율 중이며 조만간 결론을 낼 예정이다. 농어촌 빈집 활용 공유 숙박은 9월 시범 사업 실증 특례를 허용했다.
/조지원기자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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