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비닐봉다리’에 책을 잔뜩 들고 다니는 남자. 수업시간 지각을 밥 먹듯 하면서도 자기소개는 10분 넘게 하는 남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맞추는 대신 밤에 잠자리 드는 시간을 알려달라며 시계를 맞추는 남자. 신혼 살림집 책장을 아내가 정리했다고 쌍심지를 켜는 남자. 게다가 동네 사람들의 사소한 불의에도 논리와 지식으로 따져 상대를 열 받게 하는 남자. 이 정도만 해도 가까이하기 쉽지 않은 남자가 분명하다.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의 저자 이주영 씨의 신작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에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 이야기다. 저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한국에서 방송국 구성작가, PD, 번역가, 통역가로 일하다 서른 중반에 로마로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로마에서 어학 공부를 하던 중 책의 주인공 에두아르를 만났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첫 페이지부터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솔직한, 너무나 솔직한 그녀의 입담에 두 사람의 삶이 너무 명쾌하게 그려져서다. ‘편안하게 정착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삶에 등장한 남자가 바로 프랑스에서 온 아두아르였다. 그것도 책읽기 외에는 관심이 크게 없어 보이고 게다가 덜렁대기 일쑤인 남자라니. 그녀가 긴장하지 않으면 안될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온라인 서점에 등장한 댓글에는 작가 이주영의 ‘남편 사랑’을 간파한 서평도 있다. ‘으이구 이 웬수!라고 하면서도 그를 많이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싸운 뒤 자신들이 읽었던 책 한 구절을 주고받는 걸 보면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남편의 권유로 미술을 공부하게 되고, 진정한 작가로 살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그런 작가 말이다. 그 덕에 책에 들어가는 삽화는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남편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ㅋㅋ) 그런데 남편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껴 읽고 싶은 유쾌한 에세이다.
사족 하나. 수필에 등장하는 책을 골라내 차분히 읽으면 인문학적 교양이 충만해질 것만 같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indi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