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의족은 기존에 쓰던 것보다 착용감과 활동성이 훨씬 좋네요. 날이 풀리면 이번에 받은 로봇 의족을 착용하고 꼭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민 모(70) 씨는 28년 전 철도청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국가유공자다. 민 씨같이 팔·다리 의지(義肢)나 보조기 같은 보철구를 필요로 하는 국가유공자는 현재 12만 4,000명을 넘는다. 그간 국가보훈처는 합금과 실리콘으로 만든 보철구를 지급했으나 관절이 움직이지 않는 단순한 구조라 일상 생활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R&D)을 통해 우리 기술로 만든 스마트 의족으로 국가유공자의 마음까지 살피는 보훈이 가능해졌다.
지난 28일 과기정통부와 보훈처는 경기 수원시 보훈재활훈련센터에서 국가보훈·과학기술 정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상이 국가유공자 5명에게 스마트 로봇 의족 6대를 지급했다. 보훈처가 국가유공자의 기술 수요를 조사하면 과기정통부가 연구개발로 이를 상용화하고 이 제품을 보훈처가 예산을 통해 지급할 수 있는 협력 구조를 만든다는 게 협약의 골자다. 한 마디로 첨단 과학기술로 보훈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지급된 스마트 로봇 의족은 2019년 3월부터 과기정통부 산하 한국기계연구원과 민간 기업, 보훈공단이 협업해 개발·상용화한 제품이다. 독일 등 해외에서 생산한 스마트 로봇 의족이 1억 원을 호가하는 데 반해 우리 기술로 만든 이 제품은 10분의 1 수준인 1,000만원 대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이날 협약식에서 로봇 의족을 지급받은 상이 국가유공자들은 입을 모아 의족에 적용된 기술력을 칭찬했다. “활동성이 좋아져 체육 활동 때 불편감이 줄었다”거나 “보행이 자연스러워 처음 보는 사람이 다리 불편한 것을 못 알아봤다”는 등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랐다.
과기부는 이외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등 9개 기관과 함께 팔의지 3종, 다리의지 4종, 보조기 5종 등 총 26종의 기술개발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공망막장치,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스마트 보청기, 하반신 장애 보조기 ‘워크슈트’ 등 다양한 기술이 협력 추진 대상으로 선정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보훈이 단순히 금전을 지급하거나 명예를 보전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실제 생활의 불편을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스마트 의족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보훈 정책에 첨단 과학기술을 보다 폭 넓게 적용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스마트 보청기처럼 우선 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검토를 시작해 연내 보급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지현 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