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입장에서 플랫폼에 대한 고민의 방향이 바뀔 때가 됐습니다. 모든 서비스를 다 하는 빅테크식의 화려한 플랫폼보다는 은행만이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금융권에서 ‘플랫폼’이 진정한 핵심 전략으로 떠오른 것은 불과 2~3년 남짓 된 일이다. 공급자와 사용자를 이어주고 상품과 서비스가 모이는 거점 역할의 플랫폼은 애초부터 정보기술(IT) 빅테크의 핵심 사업 모델이었다. 이미 막대한 데이터와 고객 기반으로 검색·쇼핑·엔터테인먼트 등 생활 전반에 관련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빅테크가 금융에도 진출해 기존 은행에는 없던 완성도 높은 ‘금융 플랫폼’을 선보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들은 여러 은행의 상품과 서비스를 한데 모아 비교해주고 훨씬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해준 것은 물론, 은행의 고유 영역이던 계좌 기반 서비스와 여수신 업무까지 침투하고 있다. 여기에 은행에는 없는 다른 서비스와 금융을 연계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도 선사한다. 은행들이 빅테크처럼 플랫폼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배경이다.
이미 지난 2019년부터 ‘오픈 파이낸스’ 전략을 추구해온 우리은행에 플랫폼 강화는 새삼스러운 목표가 아니다. 우리은행은 이때부터 은행이 보유한 고객 정보와 출금·입금·조회 같은 은행 기능을 개방하고 외부 업체와 협업을 확대하는 ‘개방형 혁신’을 줄곧 추진해왔다. 사실상의 플랫폼 기능 강화다. 이런 개방과 공유는 은행의 가장 큰 자산을 잠재 경쟁자에게 손수 넘겨주는 셈이어서 이전까지는 대체로 금기시됐지만 우리은행은 이를 깨고 공식적인 디지털 전략으로 정립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이 전략을 처음 도입하고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인물이 황원철(사진) 우리은행 DT추진단장(부행장보)이다. 2018년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직접 발탁 영입했다. 황 부행장보는 이후 우리은행의 디지털 전략을 총괄하며 현재 우리은행의 대표 플랫폼인 ‘우리WON뱅킹’을 안착시켰다.
황 부행장보는 “은행권의 플랫폼 전략이 빅테크와는 차별화된, 은행 본업에 충실한 플랫폼으로의 진화로 집중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다양하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빅테크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기 위해 고유 업무와 관련이 낮은 비금융 서비스까지 마구잡이로 탑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이미 뼈아픈 실패 전적도 있다. 우리은행이 2015년 금융권 최초로 내놓았다가 지난해 폐지된 모바일 메신저 ‘위비톡’도 그 사례 중 하나다.
플랫폼 경쟁의 방식도 소모적인 브랜드 경쟁이나 고객 쟁탈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소비자가 단순히 우리은행의 플랫폼을 찾아오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의 자동차 스크린에서, 혹은 기업의 전산 시스템에서도 우리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끊김 없이 접할 수 있도록 은행 서비스를 녹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황 부행장보는 “최종 소비자(엔드유저) 단계에서 ‘보여주기식’ 경쟁이 과열되면서 모든 은행이 느끼는 피로도가 상당하다”며 “개인·기업이 필요로 하는 금융 서비스의 수요를 먼저 파악하고 보이지 않는 맥락 속으로 은행이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은행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