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사는 부린이·주린이…억대 작품도 걸리자마자 판매완료 '빨간딱지'

■미술시장 강력한 '회복 시그널'
화랑미술제 관객 수 작년比 3배
5일간 판매액도 평년 2배로 늘어
미술계 인플루언서 RM도 다녀가
초보투자자 미술품으로 '아트테크'
수백만원서 1억대 작품거래 활발

지난 3일 코엑스에서 개막한 화랑미술제 관람객들이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다. /사진=조상인 기자

“어제 걸려 있던 그림을 찾으시면 안 되죠. 그건 이미 팔렸습니다. 1억 넘는 작품도 예약 고객이 있으니 기다리셔야 합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겨울을 맞았던 미술 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의 첫 대형 아트페어로 7일 폐막한 화랑미술제는 행사 내내 ‘사자’ 분위기에 활기가 넘쳤다. 1,000만 원 안팎의 작품은 걸기가 무섭게 주인을 찾았고 1억 원 안팎의 고가 작품 거래와 문의도 이어졌다. 통상 1억 원 이상의 작품은 거의 거래되지 않던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곳곳에서 ‘완판’ 행렬이 터져 나오면서 판매된 작품을 내리고 새 작품을 벽에 거는 관계자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주최 측인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5일간 관람객 수는 4만 8,000여 명으로 코로나19 속에 열린 지난해보다 3배 이상 급증했고 지난 2019년과 비교해도 30% 이상 증가해 역대 최다 방문객을 기록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몇 백만 원대 소품류 판매가 대거 늘어난 것은 물론 1억 원 이상 3억~5억 원대 작품도 팔렸다”면서 “전체 판매액은 약 72억 원으로 이는 코로나19 이전 평상시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라고 말했다.


호황기를 방불케 하는 판매 실적을 두고 코로나19 이후 모처럼 제대로 열린 오프라인 행사에서 미술 애호가들의 억눌렀던 문화 욕구가 보복적 소비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미술관 관람과 아트페어 참관 등이 1년 이상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이번 미술제를 통해 관람과 소비 욕구 모두를 충족시키고자 한 듯하다”면서 “과거 해외여행으로 해소됐던 쾌락 소비가 ‘리벤지 쇼핑(보복 소비)’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데다 부동산 투자에 한발 늦었거나 증시에 불안감을 느낀 초보 투자자들이 대체 투자처로 미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화랑미술제에 참가한 한 갤러리스트가 판매된 작품의 빈 벽을 새 그림으로 채우고 있다. /사진=조상인 기자

최근 작고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개인전 형식으로 부스를 채운 갤러리 BHAK는 100호 크기(1억 8,000만 원 안팎) 작품을 3점이나 판매했고 갤러리현대를 비롯해 가나아트·표갤러리·박여숙화랑 등에 걸린 ‘물방울’도 판매로 이어졌다. 1970년대 단색조 회화(단색화)의 대표 작가인 박서보·하종현·정상화·김민정·이배 등의 작품들에 대한 구매도 이어졌다. 학고재갤러리가 출품한 김재용 작가의 도조(도자기조각) ‘도넛’ 시리즈는 100만~200만 원대 작품이 70점 이상 팔려 ‘빨간딱지(팔렸다는 뜻)’가 즐비했다. 이 밖에 설치 작가 이슬기의 200만 원대 드로잉이 개막 첫날 ‘완판’됐고 사진작가 정희승의 300만~600만 원대 작품들도 대부분 팔렸다. 화랑 관계자들은 “2007년 정점에 올랐던 미술 시장의 호황이 14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미술에 대한 정보 학습이 풍부한 관람객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 참여 중인 정희승 작가의 작품(가운데 부스)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사진=조상인 기자

학고재갤러리가 출품한 김재용 작가의 도자기 조각 ‘도너츠’ 연작에는 팔렸음을 뜻하는 빨간딱지가 70개나 붙어 있다. /사진=조상인 기자

특히 MZ세대를 포함한 젊은 미술 애호가의 증가세가 눈에 띄었다. 김동현 한국화랑협회 전시팀장은 “지난해 코로나19로 국내외 아트페어가 내놓은 온라인 뷰잉룸이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냈다”며 “이를 통해 관심을 가져온 잠재 고객들이 현장을 방문했고 구매 의욕이 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계 최고 인플루언서인 방탄소년단(BTS)의 RM(김남준)은 4일 오전 일찌감치 행사장을 다녀갔다.



박영선(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박양우(왼쪽)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3일 열린 화랑미술제 개막식에 참석해 작품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화랑협회

한국무역협회 회장인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지난 3일 화랑미술제 개막식에 참석해 작품을 관람했다. /사진 제공=한국화랑협회

추정가 13억~20억 원에 경매에 나온 이우환의 1987년 작 ‘바람과 함께’. /사진 제공=케이옥션

상승 무드는 경매시장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옥션은 오는 17일 개최하는 경매에 최근 10년간 총액 규모 최대치인 총 169점, 약 170억 원어치를 올린다. 손이천 케이옥션 홍보이사는 “최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자금의 유입, MZ세대의 진입 등으로 시장 회복세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KAAARC)는 최근 발표한 ‘2021년 상반기 미술 시장 전망’에서 “미술 시장의 호황 초기 진입 단계”라고 진단한 바 있다.



추정가 3억~4억 원에 경매에 나온 김창열의 ‘물방울LSH70’. /사진 제공=케이옥션

추정가 8억~15억 원에 경매에 나온 김환기의 ‘구성’. /사진 제공=케이옥션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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