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람 전날 땅 사고 나무심어도 보상…허점 파고든 '꾼의 설계'

왕버들 등 희귀 수종으로 이익 '뻥튀기'
전문가 "보유기간에 따라 차등 지급 등
원주민 중심으로 보상 제도 개선해야"

8일 LH 일부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한 토지에 묘목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이 정도면 보상 전문가가 설계한 수준입니다. ‘선수’가 보상금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꼼꼼하게 설계한 것 같네요.”


광명·시흥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받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A 씨가 보유한 토지를 본 한 감정평가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토지를 매입해 밭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희귀 수종으로 꼽히는 왕버들을 심었다. ㎡당 약 25주의 나무가 180∼190㎝ 간격으로 촘촘하게 심겼는데 이 나무는 3.3㎡당 한 주를 심는 것이 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감정평가사는 “결과적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행위가 가능한 것은 현재 보상 시스템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토지 보상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왕버들 심고, ‘꾼’들 독무대 된 신도시=광명·시흥 신도시 인근 주민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다른 LH 직원들과 함께 이 땅을 사들인 A 씨는 지난해 왕버들을 잔뜩 심었다. A 씨는 주말에 이곳을 직접 찾아 땅을 관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경 업계에서는 A 씨의 ‘나무 심기’를 보상을 노린 행위라고 예상했다. 조경 업계 의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왕버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 평(3.3㎡)당 1주 정도가 적당한데 희귀 수종을 들여올 정도로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빼곡하게 심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희귀 수종의 나무 평가액뿐 아니라 이식 비용까지 노린 ‘설계’라는 얘기다. 조경 업자에게 팔아 추가 수익도 가능하다. 이 같은 행위가 가능한 것은 현재 보상 시스템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토지 보상 기준이 느슨한 데 비해 내용은 복잡한 탓에 이른바 ‘꾼’들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선 A 씨 사례는 단순 토지 보상뿐 아니라 입목 보상 등 다른 간접 보상까지 노린 치밀한 설계가 이뤄지는 등 ‘전문화’된 것처럼 보인다. A 씨는 오랫동안 토지 보상 업무를 담당한 전문가 수준의 간부다.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권욱기자

◇공람일 하루 전 사들여도 막대한 이익, 보상 차등화 필요=전문가들은 난수표 수준으로 복잡해진 토지 보상 과정에서 투기 수요만 골라내려면 ‘보상 차등화’가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법에 따르면 수도권의 경우 주민 공람일 이전에 1,000㎡ 이상 토지를 갖고 있으면 협의양도인택지(협택)를 받을 수 있다. 원하는 경우 같은 공공 택지 지구 내 개발되는 다른 땅(대토)으로 보상받을 수도 있다. 정보를 미리 얻어 공람일 하루 전에만 땅을 사놓아도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유 기간에 따라 보상 체계를 달리하는 방식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신태수 지존 대표는 “현재 제도에서는 공람 공고 직전에 취득해도 이러한 인센티브를 모두 얻을 수 있다. 보유한 지 얼마 안 된 투자자에게는 인센티브 혜택을 대폭 줄여 이익 창출 자체를 봉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개발 정보를 미리 얻어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보상을 노리는 것”이라며 “보유 기간에 따라 보상액이나 세제 혜택에 차등을 둬야 한다. 단 오랫동안 보유한 사람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면 된다”고 말했다.






◇‘원주민에게만’ 대토 보상 개편 의견도=토지를 현금 대신 땅으로 보상하는 ‘대토보상제도’ 역시 원주민에게만 적용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지 보상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면 수십조 원의 돈이 시중에 풀려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정부가 대폭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 대토제도다.


하지만 대토보상제가 토지 보상의 달인인 LH 직원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된 상황이다. 대토 보상을 받게 되면 단독주택 또는 근린생활용지로 돌려받기 때문에 건물을 지을 경우 상당한 개발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대토 보상 역시 토지 보유 기간이 짧은 외지인은 제외하고 원주민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 대표는 “대토 보상의 허점을 악용할 수 없도록 원주민 위주로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강동효 기자 kdhyo@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