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쇼티지)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도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산업을 키워 안정적인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29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방안’에 따르면, 한국의 차량용 반도체 산업 규모는 9억4,000만달러로 한국이 보유한 자동차 생산역량과 비교해 지나치게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간 자동차 생산대수나 수출액으로 따진 시장점유율과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비교한 결과다.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인 미국과 독일, 일본은 각각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르네사스, 인피니언 등 세계적인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규모가 크다. 보고서는 각국의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규모에 대해 미국 130억달러, 일본 93억달러, 독일 72억달러로 분석했다. 또한 세계 시장 점유율로 따질 경우 미국은 31.4% 일본 22.4%, 독일 17.4%로 3개국이 시장을 거의 독과점 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가운데 3국의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생산대수를 기준으로11.7%, 10.5%, 5.5%이며, 수출액 기준으로는 8.1%, 11.9%, 17.0%다. 차량용 반도체 매출액으로 따진 세계시장 점유율이 자동차 생산·수출 점유율과 비슷하거나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짚었다.
반면 한국은 차량용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자동차 생산 세계 점유율은 대수 기준 4.3%, 수출액 기준 4.6%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은 매출액 기준 2.3%에 그쳐, 자동차 생산으로 차지하는 시장점유율보다 절반 가까이 작은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살펴 본 3국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것이다.
보고서는 차량용 반도체 분야는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점에서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분석했다. 또한 다른 산업용 반도체에 비해 차량용 반도체의 마진율도 낮아 기업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점도 이유로 꼽혔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가전과 스마트폰, 정보기술(IT) 기기를 위한 반도체를 생산해 내기 때문에 12인치 웨이퍼 첨단공정 위주로 생산라인이 짜여있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는 8인치 이하 구형(레거시) 공정을 활용해야 이익이 남기 때문에 단기간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는 업계의 구조적 한계도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기간산업이자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의 밸류체인이 결합된 분야인 차량용 반도체에 민관이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짚었다. 특히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트렌드가 차량 내 전기·전자부품 및 소프트웨어의 확대, 차량 연결 및 통신 네트워크 고도화, 자율주행 등으로 옮겨가면서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부가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준명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7위 규모의 자동차 산업과 세계 시장의 18.4%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보유한 국가로 차량용 반도체의 안정적인 수요처와 잠재적인 공급처가 함께 존재해 그만큼 성장 잠재력도 뛰어나다”면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통해 공급망을 내재화하면서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이상기후, 화재, 지진 등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인한 공급부족 사태에도 대비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