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ABC 논란, 언론 신뢰 회복의 기회 삼아야

박준호 문화부 기자


신문 등 인쇄 매체의 발행 부수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해당 매체를 선택한 이의 수를 나타내기 때문에 매체 파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은 물론 지면에 실리는 광고의 단가를 매기는 기준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공신력의 척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가 무용지물이 될 처지에 놓였다. 국내 유일의 부수 공사(公査) 기구인 한국ABC협회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무 감사 결과 ‘부수 부풀리기’ 등 부실이 드러났고, 이후로도 개선 권고를 이행하지 않자 문체부가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권고한 개선 사항 17건을 살펴본 결과 협회 측이 단 2건을 이행하는 데 그쳤다고 판단했다. 부수 공사 방식의 근본적 개선을 권했지만 협회는 올 하반기부터 내년 이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할 뿐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공동 조사단을 꾸려 지국 50여 곳의 추가 표본조사를 추진할 때도 제대로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문체부는 단독으로 찾은 지국 어디에서도 부수 관련 전산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행태는 분명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놓고 정부는 부수를 대신할 기준으로 열독률·구독률 등 구독자 조사와 언론중재위원회 정정보도 횟수 등 사회적 책임 지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가령 구독자 조사를 정부 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다면 정부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번 부실 집계 논란을 정부 여당이 최근 추진하는 이른바 언론 개혁 법안과 연계해서 보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법안에 언급된 ‘악의’가 어디까지 포괄되는지를 비롯해 민감한 세부 사안이 법안에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한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공적 영역에서의 제도 남용과 그로 인한 언론의 자유 침해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물론 언론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협회를 구성하는 각 매체들의 자성이 우선돼야 한다. 논란의 근원이 된 협회의 부실한 부수 집계 덕(?)에 정부 광고나 각종 보조금 등 알게 모르게 이득을 얻었음을 각 인쇄 매체들이 인정하고, 스스로 돌아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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