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상현중학교 무한상상실에는 학생들의 흥미를 끄는 특별한 주제의 강의가 열렸다. 인공지능 기술의 과거와 미래를 탐색하는 시간이 마련된 것. 동작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 사고를 높이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강의는 영화철학자 김숙 박사(예술철학)가 맡았다.
김 박사는 현실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소개로 강의를 시작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창고에서 사람보다 6배 높은 효율성으로 물류운송을 담당하고 있는 로봇 키바(Kiva), 이라크 전쟁에서 폭탄을 찾아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됐던 미국의 군용로봇 팩봇(PackBot), 노인들의 자존감 회복에 도움을 줘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반려로봇 파로(Paro) 등 여러가지 일을 척척 해내는 로봇의 활약에 대한 김 박사의 설명에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영화 터미네이터 같이 명령 없이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것을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고 설명한 김 박사는 “‘강한 인공지능’은 SF영화에서만 등장할 뿐 현실에서는 아직 그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티븐 호킹 박사는 ‘강한 인공지능’이 실현되면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빌게이츠나 일론 머스크 등 많은 이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며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 같은 인공지능로봇과 경쟁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도 기계와 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 김 박사는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를 집필한 케빈 워릭(Kevin Warwick)을 예를 들었다. 영국의 과학자 워릭은 인간은 로봇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으며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이보그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워릭은 자신의 왼손의 신경 다발을 끊고 사이보그 팔을 연결했다.
김 박사는 “워릭처럼 여러분도 인간이 사이보그로 진화하는 게 인류의 미래라고 생각하는가”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에 학생들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박사는 “걸어 다니면서 영화를 보는 일은 3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며 “인간은 꿈꿨던 것을 실현해 가고 있지만 결과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한한 상상만 이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로봇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것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며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한계는 다른 무언가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여러분도 자신의 한계를 지혜롭게 바라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동작도서관이 마련한 김 박사의 ‘로봇으로 철학하기’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상현중 2학년 서은하 양은 “로봇 기술의 역사적 변화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고 강의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2학년 이주하 양은 “로봇의 과학 기술을 철학적·윤리적으로 접근해 신선하고 유익했다”고 말했다.
김윤희 상현중 진로 교사는 “4차 산업을 철학적으로 접근해 학생들의 사고의 폭을 넓혀준 강의였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