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신흥국 부채가 글로벌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7일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교수는 백신 접종률이 선진국보다 낮은 신흥국에서 경기회복 속도가 떨어지는데 빚은 누적돼 있다며 금리 상승에 따른 자산 시장의 거품 붕괴를 경고했다.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프린스턴대 교수는 “신흥국 국가 부채 위기가 돌려막기식 다단계 금융 사기를 뜻하는 ‘폰지 사기’에서 거품이 터지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흥국 부채가 ‘블랙스완(예기치 못한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나랏빚에 대한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모럴해저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여당은 내년 국가 부채가 1,000조 원을 넘는데도 더 쓰지 못해 안달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6일 “나라 곳간이 비어간다”고 우려를 표시한 지 하루 만에 “재정이 상당히 튼튼하다”며 정반대 얘기를 했다. 여당의 압박에 밀려 또 백기를 든 셈이어서 “곳간지기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간의 부실은 통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당국이 가계 대출을 옥죄지만 8월 말 가계 대출은 전달보다 6조 원 늘어 1,046조 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204조 원의 중소기업 대출 상환 유예기간을 9월 말에서 또다시 연기하면서 기업 부실은 회복하기 힘든 수준이 돼가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부채 구조 조정에 대한 언급 없이 연체자 200만 명의 신용 사면의 필요성을 강조하니 포퓰리즘 물결을 어떻게 차단할지 걱정이다. 신흥국발 위기가 글로벌 경제로 전이될 경우 한국은 거시 경제 전체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여권은 장밋빛 환상을 버리고 남은 임기에 최대한의 구조 개혁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차기 정부 시작부터 부실 덩어리와 사투를 벌이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