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100m 앞 우회전입니다.” 익숙한 내비게이션 길 안내 음성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자동차 여행을 할 때는 지도 책자가 필수품이었지만 이제 내비게이션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처음 가보는 길도 척척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위치정보시스템(GPS) 정보를 활용한다. 하지만 원래 이 기술이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외에 인터넷·원자력·드론 등도 국방 분야에서 민간 분야로 스핀오프(spin-off) 된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방 기술을 적용한 냉각형 적외선 센서가 나로과학위성의 적외선 카메라에 장착됐다. 네트워크 침입 방지 시스템도 당초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미군으로부터 군수품과 장비들을 공급 받아 쓰던 우리나라는 1960년대 후반부터 당시 열악한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예산 투자, 방위세 신설 등으로 자주국방 실현을 위해 피땀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기계·전자·화학·금속 등 제조업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전차·장갑차·함정 등 주요 무기 체계의 자립화를 이뤘고, K2 전차와 K9 자주포, T-50 항공기, 잠수함 등 명품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올해도 55조 원이 넘는 국방비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군사력 세계 6위, 국방과학 기술 세계 9위라는 위상을 견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여지는 충분하다. 특히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 등 4차 산업혁명 요소 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인 전투 체계, 사이버 공간과 항공?우주 분야에서도 빈틈없는 국방 태세를 공고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는 방위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자주국방의 근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내는 신성장 동력이라는 관점에서 방위산업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국방 기술이 민간 분야와 융합돼 국가 차원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달 국방 기술 관련 부처들로 구성된 ‘국방과학기술위원회’의 출범은 도전적 첨단 기술 개발 환경을 조성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해 나가기 위해 매우 시의적절했다.
특히 항공?우주 분야는 2040년 기준으로 시장 규모가 1조 달러, 즉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할 만큼 잠재력이 충분한 영역이다. 우리나라도 누리호 발사를 통해 세계 정상급 발사체 기술 수준을 보여주면서 우주 공간이 더 이상 일부 국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일깨워줬다. 또한 세계 여덟 번째로 개발한 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의 양산도 머지않았다. 이에 더해 탑재 엔진까지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항공 방어 전력의 확충뿐 아니라 민간 항공용, 선박용 및 발전소용 가스터빈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수준의 기술 자립을 이루게 될 것이다.
지난 9월 미국의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 드래건’이 사흘간의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착륙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간 업체가 우주를 탐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시나브로 이제는 우주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스페이스-K’ 탄생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