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3대 미술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필립스가 올 한 해만 18조 4,000억 원어치의 미술품을 거래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는 미술 경매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크리스티는 20일(현지 시간) “올해 약 71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어치의 매출을 기록했다”면서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보다도 크며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판매 총액”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19일에는 소더비가 “277년 역사상 최고 매출액인 73억 달러(약 8조 6,0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발표했다. 양대 경매 회사에 비해 규모가 작으나 세계 3위인 필립스가 올해 거둬들인 12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또한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이다.
이들 경매 회사 매출 급증의 배경에는 ‘큰손’ MZ 세대가 있다. 크리스티의 최고경영자(CEO) 기욤 세루티는 디지털 아트에 가상자산을 접목한 대체불가토큰(NFT) 미술품을 징검다리 삼아 새롭게 유입된 젊은 컬렉터들이 실물 미술로까지 관심을 확장시킨 것을 의미심장하게 봤다. 세루티는 20일 비대면으로 진행한 글로벌 기자 간담회에서 “올 3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입찰에 참여했던 고객이 이후 다른 경매에도 꾸준히 참여했고 마침내 전통적 미술품들이 거래되는 뉴욕 이브닝 세일에서 피카소 작품을 구입했다”고 밝히며 “NFT 수집가가 전통적인 수집가들로 확장됐고 실물 예술과 다지털 아트의 경계는 점점 중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 3월 세계 최초로 NFT 미술품을 경매에 올린 크리스티는 비플의 ‘에브리데이스’를 6,900만 달러(약 780억 원·수수료 포함)에 낙찰시켰다. 그 이후 NFT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크리스티는 올 한 해 100개 이상의 NFT 거래를 통해 약 1억 5,000만 달러(약 1,800억 원)의 판매 총액을 거뒀다.
이 같은 분위기는 소더비도 마찬가지였다. 소더비의 사상 최대 연 매출 가운데 NFT는 약 1억 달러(1,200억 원)를 차지했다. 소더비 측은 “암호화폐 플랫폼 트론의 설립자 저스틴 선은 NFT를 계기로 미술품 수집에 발을 들였고 지난달 뉴욕 경매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르네즈’를 사들여 실물 구입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불러왔다”고 밝혔다. 소더비 경매에서 NFT 작품에 입찰한 고객의 78%는 소더비의 첫 고객이었고 그들의 절반 이상이 40세 미만의 MZ 세대였다. 크리스티도 NFT 작품 낙찰자 중 75%가 크리스티의 신규 고객이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42세였다고 분석했다.
한편 올해 거래된 최고가 미술 작품은 크리스티가 거래한 파블로 피카소의 1932년작 ‘창가에 앉아 있는 여인’으로 1억 340만 달러(약 1,167억 원)에 낙찰됐다. 올해 경매 낙찰작 중 1억 달러를 넘는 유일한 작품이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인 디스 케이스’가 작가의 역대 두 번째 고가인 9,310만 달러(약 1,047억 원)에 낙찰돼 그 뒤를 이었다. 3위는 뉴욕 소더비에서 9,218만 달러(약 1,031억 원)에 팔린 산드로 보티첼리의 ‘젊은 남성의 초상화’였고 4위는 오묘한 분홍과 노랑·주황이 배치된 마크 로스코의 ‘No. 7’으로 8,250만 달러(약 990억 원)에 팔렸다. 5위는 자코메티의 조각 설치 작품 ‘르네즈’였고 빈센트 반 고흐의 풍경화 ‘올리브나무와 사이프러스가 있는 오두막집’,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과 거의 흡사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 뒤를 이었다. 비플의 ‘에브리데이스’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8위에 올랐고 전후 미술을 대표하는 잭슨 폴록과 사이 트웜블리의 작품이 각각 9, 10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