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3일 신년사에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혁신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것”이라며 기업의 세대교체 및 산업전환을 올해 과제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올해, 우리는 전환기 정책금융의 시대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회장은 구조조정 현안을 전두지휘하는 정책금융기관의 장으로 구조조정에 대해 ‘끝나지 않을 숙제’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산업 생태계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더 많은 한계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회장은 “시장은 물론 지역사회와 노조, 그리고 언론이 그 원칙을 이해하고 기대하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 전체의 회수율 제고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금융은 길게 보고 인내자본 공급,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회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혁신의 어려움을 ‘대동법’에 비춰 토로했다. 대동법은 소유한 땅 크기에 따라 쌀로 세금을 부과하는 표준화된 세제다. 조선 시대 지역별 특산물을 임의로 배정하는 기존 과세방식에 비춰 혁신적인 제도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혁신적 제도가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뒤 1708년 전국적인 세법으로 확대될 때까지 무려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며 “기득권의 갖가지 반대와 물건(특산물)으로 세금을 바치는 것이 백성의 충성심이라 여긴 낡은 관념이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소신 있는 경제 관료들이 오랜 세월, 정치생명을 걸고 사심 없이, 신념을 지켜 이룩한 결과 개혁은 이뤄졌다”며 “혁신은 이렇게 어려운 것으로 힘을 모으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신년사에서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한 데 최근 산은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의 상황이 순탄치 않은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과 관련해 운수권·슬롯(비행기 이착륙 횟수) 회수를 전제 조건으로 조건부 기업결합승인을 잠정결론 내린 게 대표적이다. 산은이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두 항공사의 통합을 추진해온 당초 취지와 상반되는 결정이다. 유럽연합(EU)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우선협상대상자인 에디슨모터스를 두고 정상화 계획의 타당성 논란뿐만 아니라 자금조달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회장은 “기업의 세대교체는 저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며 “오늘 우리와 인연을 맺은 회사들이 후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 한국의 정책금융이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고 산은이 ‘위대한 은행’으로 존경받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