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반도체 수급난이 완성차 업계의 대규모 생산 차질을 불러일으켰다면 올해에는 이차전지·전기모터 원자재가 공급망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10일 공개한 ‘2022년에 주목할 글로벌 차 산업 5대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자원부국의 원자재 수출통제로 인한 수급 불안 및 유럽내 에너지 위기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올해 자동차 부품 공급망 위기의 진원지로는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꼽았다. 연구원은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 원료인 흑연 수요가 급증하면서 최대 생산지인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 부족이 심각해지는 등 흑연의 편재(偏在)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모터의 핵심 소재인 ‘희토류’ 역시 중국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희토류 생산기업과 연구기관 5곳을 통합하여 ‘중국 희토류 그룹’을 출범시키며 세계 희토류 공급망에 대한 통제·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는 리튬이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원재료인 니켈을 수출 통제하고 있다.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원광 수출 통제를 통해 자국 내 배터리 관련 산업의 일관 공정화를 추진하며, 주요 완성차사와 배터리사의 현지 공장 설립을 유도하고 있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다.
유럽의 에너지 수급 문제도 잠재적인 위협으로 주목된다.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며 유럽 내 전력요금이 상승하는 등 에너지 위기가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계절성으로 인한 재생에너지 발전감소, 천연가스 수급 불균형, 탄소배출비용 인상 등의 복합적인 원인들로 인해 최근 수 개월간 에너지 가격이 3~4배 가량 폭등했다”고 전했다. 이어 “에너지 믹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가속페달을 밟은 유럽의 탄소배출 발전원 감축 정책과, 이를 노리고 자국의 핵심이익인 천연가스를 자원무기화한 러시아의 대(對)유럽 정책이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에 주목할 또다른 자동차 산업 트렌드는 ‘중국 브랜드의 세계 시장 약진’이다.
연구원은 “중국 브랜드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반의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성능 등 높은 상품성을 바탕으로 서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며 “신흥 시장에서도 초소형 전기차 등 저가 전기차의 수출 확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중국 자동차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는 수요, 공급, 정책의 3가지 요인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우선 단기적으로 내수 시장이 성장 정체기에 도달해 신규 시장에서 수요를 발굴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현재 중국은 경제성장률 감소, 소득 양극화 등으로 승용 및 경상용차 내수 판매량은 2017년 이후 뚜렷한 성장세 없이 연 2,000만대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생산 설비에 과잉 투자가 발생해 판매처를 확대할 필요도 있다. 통상 세계 주요 완성차 기업의 생산 설비 가동률은 80~90% 내외이나 중국은 70~80% 수준으로 구조적으로 격차가 있으며 2020년도에는 COVID-19 여파로 가동률이 50% 미만으로 하락했다.
아울러 중앙·지방정부가 글로벌 기업 육성을 목표로 소수 완성차 기업에 수출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신에너지차 산업 발전계획을 통해 차 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 및 해외 진출 의지를 천명했고, 수출 장려를 위해 유럽 신차안전도평가(NCAP) 시설을 국내에 건설하는 등 업계에 분명한 정책 신호를 전달했다.
연구원은 특히 중국 브랜드들이 충전 인프라가 미흡한 신흥국에 전기차와 배터리 교환형 사업 모델을 동시 수출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전기차 판매량이 급등하지만, 과연 전기차가 친환경차인지에 대한 논란도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원은 작년 전세계 친환경차(xEV) 판매량이 1,000만대를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며 이중 배터리 전기차(BEV)가 약 430만대로 전년 대비 93.7%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지만, 당분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 자동차·배터리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 확보는 예상보다 지연될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 누적 주문량이 이미 올해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등 수급난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배터리 원자재인 니켈·코발트 가격 인상으로 전기차 원가 상승 압력도 커졌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가격의 '동등화'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각국의 구매보조금 정책에 따라 판매량 급증세가 꺾일 우려도 있다.
아울러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차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에서는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평가를 제품의 전(全)주기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은 탄소중립 관련 제도화에 앞서 자동차의 생산-활용-폐기·재활용 등에서의 종합적인 환경 영향을 평가하는 전주기평가 도입을 논의 중이다. 연구원은 전주기평가 결과 전기차의 친환경성 우위가 뚜렷하지 않을 경우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주력화 시점을 늦추고 단기적으로 하이브리드차 등으로 수익성을 높이려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얼리 어답터'를 중심으로 전기차 구매가 늘어났지만, 만약 전기요금 인상 등의 문제가 있다면 주류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에 주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올해도 중국 등 각국 정부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유지한다는 방침이어서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꺾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외에도 연구원은 △완성차 업계의 차별화 전략 모색 △디지털 전환 모색을 올해 트렌드로 꼽았다.
과거 주요 완성차 기업은 파워트레인·섀시 등 자동차 핵심 요소에 대한 독자적인 설계·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제품을 차별화했지만, 파워트레인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발전 등으로 차별성이 약화되고 있다. 자동차의 핵심 기술이 엔진 등의 설계가 아닌 전장 부품으로 이동하면서 자동차 제조원가에서 전장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약 50%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구원은 전기차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테슬라 등 선도 기업의 구동 성능, 배터리 용량, 충전 속도를 표준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완성차기업이 선도 기업을 추격하기 위해 벤치마킹, 동급 부품 사용 등을 지향하면서 제품의 '동질화'가 이뤄지고 있어 향후에는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의 기본 주행 성능보다 다목적성이나 서비스 차별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전환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온라인 신차 판매가 확대되고, 주요 부품에 센서를 부착해 고장 징후와 잔여 수명 등을 진단하는 기술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구축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영국 등에서 '클릭 투 바이' 온라인 판매를 운영 중이며, 한국에서는 캐스퍼를 온라인 판매했다. 벤츠, BMW, 한국GM, 르노삼성차도 온라인 판매 차종을 확대하며 온라인 판매 채널을 다양화하고 있다.
연구원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정보 보안, 데이터 소유권 이슈 등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럼에도 차 산업에서 디지털 전환의 물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