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전임자가 회사에서 급여를 받고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결정하는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 한도 조정 논의가 결국 법정 의결 시한을 넘겼다. 한도 조정 여부를 놓고 8년 만에 경영계와 노동계가 어렵게 마주했지만, 팽팽한 입장 차이로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변수까지 마주하면서 논의 속도는 더 느려질 전망이다.
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따르면 경사노위 산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는 3일 서울 경사노위 회의실에서 제17차 전원회의에서 타임오프제 한도 조정을 심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작년 11월30일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심의 요청에 따라 이날로 예정된 60일 내 의결시한(연휴기간 추가)을 넘긴 것이다. 이날 열기로 한 제18차 전원회의도 위원 일부의 코로나19 확진으로 기약없이 연기됐다. 근면위는 노동·경영·공익위원이 각각 5명씩 총 15명으로 구성된다. 노사정이 논의하는 방식으로 취저임금위원회와 비슷하다.
타임오프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4조(근로시간 면제 등)에 따라 2010년 7월부터 시행된 제도다. 근로시간 면제 한도 내에서 사업장마다 유급 노조 전임자를 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99명 미만 노조의 경우 최대 2,000시간, 100명에서 199명 사이는 3000시간으로 정하는 등 조합원 수가 많을수록 근로시간 면제 한도 시간이 늘어나는 방식이다. 시행 1년 만에 노조 10곳 가운데 9개꼴로 도입하면서 노조 운영에 직결되는 제도가 됐다.
2013년 6월 이후 8년 만에 재개된 타임오프제 논의는 순탄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대로 흘러왔다. 노동계는 타임오프제 도입으로 노조 운영에 지장이 크다며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노조 전임자 급여는 사측이 아니라 노조가 부담해야 한다며 늘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 경사노위가 일반에 공개한 제 12~13차 전원회의 양측 요구안에는 이 같은 양측의 뚜렷한 입장 차이가 담겼다. 당시 노동계는 현재 10개인 한도 구간을 5개로 줄여 노조의 사용 시간 재량 범위를 늘리고, 1000명 미만 조합원 노조에도 지역 가중치 적용, 연합단체 전임 활동에 추가 한도 부여 등을 요구했다. 반면 5000명 이상 조합원 노조부터 규모 별로 3구간으로 나눠 최대 3만6000시간 이내 한도(1만5000명 이상)를 부여하는 기존 방식에 대해 경영계는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대안으로 3개 구간을 5000인 이상 조합원 노조일 경우로 축소하고, 최대 한도도 2만 시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노동계가 늘리려는 지역 분포 가중치의 폐지도 요구했다. 직전 회의였던 16차 전원회의에서도 양측은 이 최초 요구안을 기초로 1차, 2차 수정안이 제출해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한도 심의의 기초가 되는 근면위의 실태조사 결과를 두고 양측이 세게 부딪혔다. 근면위가 작년 10~11월 사업장 현장 조사를 한 결과, 타임오프제 한도 내에서 노조 활동 시간 비율은 평균 20%대에 그쳤다. 경영계는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현실에 맞게 한도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설문 방식이 부정확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현장 활동이 어려워 사용 시간이 줄었다고 맞섰다. 그러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27일 문 위원장을 만나 타임오프제 논의를 언급하면서 “근면위 논의 결과가 글로벌 스탠다드(국제적 기준)와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해 합리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우회적으로 노동계 요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손 회장이 언급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노조 전임자 급여를 사측이 부담하지 않는다는 경영계의 기존 입장이 담긴 것이란 해석이다.
타임오프제 논의가 심의 기한을 넘기면서 사회적 대타협기구인 경사노위의 역할에 대한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경사노위는 문재인 정부 막판까지 양대노총 중 한 곳인 민주노총을 끌어오지 못했다. 한국노총은 타임오프제 논의가 지지부진하거나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경사노위 탈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작년 9월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공개석상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정책연대를 파기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