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8000억 기대한 '보로노이' 5000억도 못넘기자 IPO 철회

수요예측 부진에 잔여 일정 전면 취소
원하는 기업가치 인정 못 받아
애초 VC 업계서도 호불호 갈려

김대권 보로노이 대표

표적 치료제 신약 개발사 보로노이가 기업공개(IPO)에 실패했다. 일반 투자자 대상 청약에 앞서 기관 투자가들에 청약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기관들에 배정한 공모 물량을 채우지 못하자 상장 일정을 취소했다. 다수의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을 앞세워 8000억 원이 넘는 상장 몸 값을 제시했는데, 애초 벤처캐피탈(VC) 투자 단계부터 투자자들에 호불호가 갈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로노이는 16일 수요예측 부진을 이유로 IPO 잔여 일정을 전면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당초 보로노이는 17일 공모가를 확정한 뒤 21~22일 일반청약, 30일 증시에 입성할 계획이었다.


업계는 보로노이가 상장을 접은 표면적인 이유는 시가총액 5000억 원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고있다. 보로노이는 시장평가 우수기업 특례로 상장을 추진했다. 기술 특례 제도를 이용하면 두 곳의 평가 기관에서 A·BBB 이상의 등급을 받아야 하지만 시장평가 우수기업 특례는 한 곳의 평가기관 한 곳에서만 A등급을 받아도 상장이 가능하다. 다만 시장평가 우수기업 특례 상장을 위해선 시가총액이 5000억 원을 넘어서야 한다. 보로노이는 공모가 상단 기준 8600억 원의 몸 값을 기대했지만 수요예측 부진에 밴드 내에서 기관 배정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이 5000억 원을 넘기 힘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투자자들의 적정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판단이 상장 철회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한 IB 관계자는 “(한 평가 기관으로부터) A등급을 받은 만큼 (5000억 원 요건이 필요 없는)기술 특례로도 상장 추진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결국 상장을 철회한 근본적인 원인은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상장 전 지분투자에 나선 일부 VC들은 보로노이에 1조 원 이상 기업가치가 있다고 봤다.


DS자산운용과 복수의 VC들이 보로노이에 투자했지만 애초 투자은행(IB)업계에서 보로노이에 대한 호불호도 뚜렷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수의 파이프라인을 앞세워 해외 3건, 국내 1건 등 총 4건의 기술 이전에 성공한 점을 높이 평가한 곳도 있는 반면, 아직 연구 초기인 파이프라인의 숫자만 내세워 기업가치를 산술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도 있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김현태 대표가 바이오 출신이 아닌, 증권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상장 전부터 업계에서 이슈가 됐다”며 “다수의 파이프라인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기업가치를 높인 것에 거부감을 드러낸 VC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관 투자가는 해외 기술 이전을 앞세워 시총을 불린 뒤 상장을 시도한 것인데 기술 이전 대상 자체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기술 이전에 따른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이 2조 원에 달하는데 기술을 넘긴 곳의 시가총액이 3000억 원 수준으로 보로노이 보다 작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보로노이가 이날 상장 일정을 전면 취소하면서 추후 일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공모주 투자 열기가 한풀 꺾였고 특히 바이오 기업들의 성적이 부진해 한동안 재도전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보로노이 측은 “핵심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며 향후 시장 안정화 시점을 고려해 상장에 재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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