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저는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았어요. 아침에는 그럴 수가 없어요. 세상에 아침이 있다는 게 정말 멋지지 않나요? (…) 어젯밤에는 세상이 울부짖는 황야 같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맑고 밝은 아침이라 기뻐요. 하지만 저는 비 내리는 아침도 좋아해요. 아침은 어떤 아침이든 다 흥미로워요.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상상할 거리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비가 안 와서 좋아요. 날이 맑으면 기분을 밝게 유지하고 고통을 견디는 게 더 쉽거든요. 저는 지금 견뎌야 할 게 아주 많아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강머리 앤’, 2019년 윌북 펴냄)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무겁고 우울할 때면 빨강머리 앤을 생각한다. 놀랍게도 아침에 대한 경이로 가득찬 이 말은 앤이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날에 한 말이다. 전날 밤 앤은 다락방에서 외롭고 끔찍한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새 사람처럼 일어난 앤은 말한다. “세상에 아침이 있다는 게 정말 멋지지 않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 익숙할 ‘빨강머리 앤’의 원작소설에는 고아 소녀 앤의 아픔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앤을 고아원으로 ‘반납’하기 위해 가는 길, 마릴라 아주머니는 앤이 살아온 얘기를 듣고는 생각한다. 이 아이는 ‘굶주리고 사랑 없는 인생, 중노동과 궁핍과 방치로 이어진 인생’을 살아왔구나. 그러나 앤은 알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에게 불공평하고 혹독할지라도, 매일 새로 찾아오는 아침은 그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희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희망에 매번 경탄할 줄 알았던 아침의 앤은 결국 선한 마음을 지닌 어른들을 설득해내고 새 삶을 이루어낸다. 괜한 짜증과 무기력이 덮치는 아침이면 빨강머리 앤을 생각한다. 견뎌야 할 것이 아주 많은 날 아침에도 노래하듯 아침의 희망을 온몸으로 받았던 앤 셜리, 그 작은 소녀를. /이연실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