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스퀘어 자회사인 이커머스 기업 11번가가 코스피 상장을 추진한다. 2018년 국민연금 등이 4500억 원을 투자하며 15%의 수익률을 기대했던 회사다. 그 동안 쿠팡의 상장, 네이버의 성장, 이베이코리아 매각 등 요동치던 이머커스 시장에서 11번가의 위상은 약화한 게 사실이다. 11번가는 물밑에서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약해진 위상만큼 협상은 결렬됐다. 결국 최후의 수단이라 할 만한 상장으로 투자금 회수에 나선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전날 10여 곳의 국내외 증권사에 상장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국내 증권사 중엔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KB·대신·NH투자 증권이, 외국계 증권사에선 뱅크오브아메리카·크레디스스위스·씨티그룹글로벌마켓·JP모건 등이 제안 요청을 받았다. 11번가는 다음 달 중 주관사를 선정하고 내년에 상장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SK스퀘어 자회사 중에선 SK쉴더스·원스토어에 이어 세 번째로 상장에 성공하게 된다.
11번가가 상장을 추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존 투자자와 맺은 계약이다. 2018년 9월 국민연금(3500억원)과 새마을금고(500억원)는 사모펀드(PEF)운용사 H&Q코리아가 설정한 4500억 원 규모 펀드를 통해 11번가에 투자했다. 투자자들은 당시 11번가의 기업가치를 2조 7000억원으로 평가했다.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는 만기 전엔 배당금을 받고 만기 후엔 투자금을 상환 받거나 지분으로 전환해 팔 수 있는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투자했다. 3500억원은 국민연금의 단일 기업 투자 건으로는 당시까지 최대 액수였다. 국민연금은 회사를 키우겠다는 SK그룹의 약속을 믿고 15% 수익률을 기대했다.
당시에도 11번가는 업계 중위권의 위치에 적자 상태여서 국민연금의 조건은 깐깐했다. 매년 주식 발행 금액의 1~6%를 배당 받기로 했고, 2023년까지 국민연금이 정한 적격 조건에 따라 상장하거나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대주주인 SK지분까지 묶어 팔 수 있는 드래그 얼롱(drag along) 조항을 챙겼다.
11번가는 국민연금 등이 투자한 2018년부터 영업 적자 상태에서 총 525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했고 투자자는 총 95억 원을 가져갔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투자 원금 이외 약 500억 원의 수익을 예상한 터라 아직 성공적인 투자라고 보긴 어렵다” 고 지적했다.
11번가는 덩치를 키우는 경쟁자 틈바구니에서 시장 점유율이 6%로 네이버(17%), 쓱닷컴·이베이(15%), 쿠팡(13%)보다 낮다. 지난해 8월 세계 최대 이커머스 업체인 아마존과 ‘아마존스토어’를 선보였지만, 지난해 11월 대비 1월 순이용자가 4% 떨어졌다.
실적은 지난해 영업손실 694억 원을 기록하며 2020년(98억 원)에 이어 2년 연속 영업 적자를 보였다. 이에 비해 작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약 3% 늘어난 5614억 원에 그쳤다. 2019년 이후 매출액이 5000억 원 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1번가는 지난해 롯데그룹과 매각을 위한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역시 이커머스 롯데온의 부진으로 활로가 필요한 상태였다. 당시 양측은 11번가의 몸값을 3조 5000억 원 안팎으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장 과정에서는 이보다 높은 4조원 안팎을 기대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이에 대해 11번가 측은 아마존스토오 라이브 커머스 등 새로운 시도를 위한 투자가 이어지며, 당기순손실이 있었지만 사업 자체가 부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의 대표적인 전략가였던 하형일 신임 대표가 취임하면서 회사에 힘이 실렸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