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2017년 5월 국제학술대회에서 “현재 820종의 주요 직업 중 34%가 인공지능(AI)·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시장 부문의 석학인 그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의 파괴적인 변화를 예고한 것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다만 기계가 고용을 빼앗더라도 15~20%의 인구가 헬스케어 영역에서 새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며 과도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역으로 의료·교육 등 신산업 수요 창출을 위한 각국의 적극적인 대비를 당부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1948년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피사리데스는 영국 에식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사우스햄튼대를 거쳐 1976년부터 런던정경대에서 노동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탐구해온 피사리데스는 2010년 피터 다이아몬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데일 모텐슨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공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경제정책이 실업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의 연구는 남유럽 재정 문제와 맞물려 고국인 키프로스를 강타한 경제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2012년 키프로스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돼 위기의 해법을 제시했고 이듬해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디스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맡았다. 2020년에는 그리스의 성장 전략을 만드는 일을 책임졌다.
피사리데스 교수가 22일 “최근 영국의 노동시장 상황이 1970년대보다 더 나쁘다”고 우려했다. 30여년 만에 발생한 영국 철도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에서 보듯이 업무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증발에 이어 인플레이션이 몰고 온 임금 인상 등 ‘2차 효과’가 노동시장을 최악으로 치닫게 한다는 것이다. 강한 노조를 가진 근로자들은 인플레이션 등 외부 충격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고 부담은 다른 사람들이 지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 역시 노동계의 임금 인상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하투(夏鬪) 기운도 고조되고 있다. 정부·기업뿐 아니라 노조도 고통 분담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