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업계에서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를 대표적인 규제 주머니 중 하나로 꼽는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기업의 사업 진출 및 시장 활성화 역할을 막아 되레 외국 자본에 잠식되는 품목까지 초래했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김치가 대표적이다. 김치가 2011년 ‘중소기업 적합 업종’, 2018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은 업소용 김치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다. 2019년 관련 규제가 해제됐지만 대기업과 공공기관·대한민국김치협회 등이 맺은 자율 협약에 따라 대기업은 일반 식당 및 대학에서 사업을 철수하고 중고교 급식 및 군납 시장 확장을 자제해야 한다. 자율 협약은 권고 사항이지만 대기업들은 사실상 의무 사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사이 국내 김치 시장은 중국산이 점령했다. B2C(소비자와 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는 대기업 제품이 잘 팔리지만 일반 식당, 급식장 등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의 경우 90% 이상이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고 있다.
김치를 만드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수출용 공장이 아니면 설비를 확장하는 데 눈치가 보일 지경”이라며 “규제를 하기보다는 대기업이 기술력과 유통력을 바탕으로 중소기업과 상생 협력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장류·면류(국수·냉면)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돼 있는데 장기적으로 식품 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된 의견이다.
규제 일변도인 친환경 정책에 대한 속도 조절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식품 업계는 지난 정권에서 유난히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며 내놓은 기업 규제가 많았다고 하소연한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폐기물 발생 억제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근본 취지는 좋지만 일선 현장에서 이를 단기간에 적응하고 지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물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유통기한’을 폐지하고 ‘소비기한’이 도입되는데 이를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 식품 업체 관계자는 “내년 1월부터는 소비기한이 적힌 포장재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 경우 미리 구매한 유통기한 표기 포장재는 다 버려야 해 쓰레기 발생량이 엄청날 것”이라며 “제도 도입을 유예해 일정 기간 유통기한 포장재 사용 제품 판매를 허가한다면 폐기물 발생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체급식 업체들은 외부 음식 반출 금지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한다. 최근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지갑이 얇아진 직장인들이 사내 식당에서 배식을 하지 않고 남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단체급식 점포는 영업 신고 시 ‘위탁급식업’과 ‘일반음식점’으로 구분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위탁급식업은 음식 외부 반출이 불가능하며 테이크아웃 메뉴도 신고된 공간 안에서만 취식할 수 있다. 식중독과 같은 단체 위생 사고가 터졌을 때 추적 조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식품 업계 관계자는 “1인가구가 증가하고 가정간편식(HMR) 일상화에 따라 급식 메뉴의 포장 판매에 대해 고객들의 지속적인 요청이 많다”며 “외부 음식 반출 일지 작성 등을 도입하면 위생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현재 단체급식 사업장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남은 식재료도 당일 폐기가 원칙이다. 대파와 양파 등 멀쩡한 채소류도 하루가 지나면 버려야 한다. 이를 활용하면 급식 단가를 낮추고 식재료 순환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식품 업계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