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105호 협약 비준 추진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05호는 ILO 핵심협약 3개를 비준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준 추진을 못할 만큼 논쟁적인 협약이다.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최근 ILO 기본협약 이행 등을 위한 국제노동기준에 관한 연구에 대해 입찰’을 공고했다. 올해 말까지 마쳐야 하는 연구는 한국이 비준한 협약과 국내법 쟁점 분석, 추가 비준할 협약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연구 용역에 대해 "ILO 1O5호 비준 추진에 대한 검토 성격도 있다"고 설명했다.
ILO 105호는 강제노동을 철폐하는 ILO 핵심협약 중 하나다. 고용부가 105호 비준 재검토에 나선 이유는 최근 중국에 이어 일본도 조만간 비준할 상황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비준을 하면 동북아 3국가에서 한국만 비준을 안한 상황이 된다. ILO에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 국가 중에서도 한국만 미비준국가로 남게 됐다. 현재 ILO 전체 회원국 187국 가운데 176개국이 105호를 비준했다.
ILO는 30여년간 한국 정부에 105호 비준을 권고해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비준이 쉽지 않은 논쟁적인 협약으로 판단해 왔다. 문 정부에서도 105호 비롯해 4개 협약 비준(105호, 27호, 87호, 98호)을 검토하다가 105호를 제외하고 3개 협약에 대한 비준만 추진하기로 했다. 2019년 105호 비준 추진 제외를 발표했던 당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우리나라 형벌 체계와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진 여부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했다"며 "국내 전체 형벌체계를 개편해야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105호 협약이 한국 정부의 징역형 체계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105호는 정치적 견해표명에 대한 처벌로 강제노동을 금지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국가보안법 등 다양한 법에 대한 징역형도 할 수 없다. ILO 협약은 국내 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윤 정부가 105호 협약 비준 추진을 결정하더라도 비준 시기를 예상하기 어렵다. 경영계 설득이 고비인 사회적 합의부터 법 개정, 국회 동의 등 여러 단계를 넘어야 한다. 문 정부에서 비준을 추진한 3개 ILO 협약은 국정 과제였다. 정부는 2018년부터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 2020년까지 협약 비준을 위한 관련법(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마쳤다. 이 때문에 ILO 비준이 정부 의지에 달렸다는 평가도 많다.
한국이 비준한 ILO 3개 협약은 올해 4월 발효됐다. 제29호는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금지하고 제87호는 노사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98호는 근로자의 단결권 행사를 보호하도록 했다. 만일 한국이 105호를 비준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노동선진국이란 평가를 들을 수 있다. 이미 한국은 ILO 핵심협약 8개 중 105호를 제외한 7개를 비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