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혼다, 5조 들여 美합작공장…한미일, 中타도 '공동보조'

■K배터리 '광폭 투자'
권영수 부회장 "북미 지배력 강화"
SK온·삼성SDI도 생산라인 확보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수주 확대
북미 거점없는 CATL과 격차 해소 기대
다만 현대차 등 보조금 혜택 대상서 제외
가격 경쟁력 불리…“국가 대 국가 대응 필요”


국내 배터리 업계의 ‘광폭 투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위기이자 기회로 삼으려는 기업들의 의지가 반영된 행보다. 당장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배터리 3사 모두 현지 생산 라인을 갖추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판단이다. 배터리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를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CATL을 포함해 중국 업체들과의 점유율 격차를 해소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완성차 업체들은 IRA의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글로벌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향후 3년간 북미와 유럽에 그야말로 대대적인 투자를 앞두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현지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법인(JV)을 구성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안정적으로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제1~3공장 건설을 진행 중인 LG에너지솔루션은 인디애나주에 제4공장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표한 일본 혼다와의 합작법인에도 5조 원이 넘는 금액이 투입된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높은 브랜드 신뢰도를 구축한 혼다와의 이번 합작은 북미 전기차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에 설립 예정인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에도 4조 8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SK온은 포드와 미국을 넘어 터키에도 합작공장 설립을 확정지으며 북미와 유럽을 넘나드는 생산 라인을 확보한 상태다. 삼성SDI 역시 스텔란티스와의 인디애나주 합작법인을 통해 미국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두루 공략하던 국내 배터리 업계에 IRA는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IRA에 따르면 2027년부터는 배터리 구성 요소나 핵심 광물을 최대 80%까지 미국산을 사용해야 한다. 배터리를 단순히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인 것이다. 문제는 배터리 소재를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라는 점은 중국과 비교해 국내 배터리 3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1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현재 북미에 생산 거점도 없을뿐더러 중국은 미국과 FTA도 체결하지 않았다. CATL이 멕시코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 위한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각 지역에 생산 거점을 확보한 한국 업체들과 생산 규모와 경쟁력 측면에서 차이가 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박진수 신영증권 연구원은 “IRA는 선제적으로 북미 배터리 생산 거점을 구축한 국내 배터리 3사에 기대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현지 OEM사와 향후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인 OEM사 입장에서는 현지 배터리 협력사로 국내 배터리 3사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배터리 업체가 수혜를 얻을 것으로 전망되는 것과 달리 완성차 업체는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미국에 100억 달러 이상의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2025년까지 미국에 5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 회장이 밝힌 투자 분야는 로보틱스·도심항공모빌리티·자율주행·인공지능 등으로 투자 규모는 약 6조 70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설립하기 위한 자금 55억 달러(약 7조 4000억 원)와는 별개의 투자 약속으로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금액은 총 105억 달러(약 14조 원) 규모까지 늘어났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정 회장에게 “미국을 선택해준 것에 감사하다. 미국은 현대차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IRA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규정함으로써 국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현대차와 기아는 자연스럽게 보조금 혜택 대상에서 제외됐다. 차량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GM·포드 등 미국 완성차 제조사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보조금 혜택 대상에서 빠지면서 단기적으로 시장 혼란이 예상된다”며 “국가 대 국가로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이행에 근거한 법안의 혜택 조정 등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