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30·토트넘)의 세리머니는 의미심장했다. 첫 골 때 아무 움직임과 표정 없이 서있다가 동료들의 뜨거운 포옹을 오롯이 느낀 그는 두 번째 득점 때는 입술에 검지를 대는 동작으로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우려들에 메시지를 보냈다. 세 번째 골 때는 마침내 손가락 3개를 펴 보이는 시원스러운 동작으로 득점왕의 완벽한 재기를 선언했다.
유럽 대항전을 포함해 8경기 동안 나오지 않던 골이 13분 사이 세 번이나 터졌다. 손흥민은 후반 14분에 교체 투입됐는데 토트넘 구단 역사상 교체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것은 손흥민이 최초다. 모든 팀을 통틀어서도 7년 만의 진기록이다.
18일(한국 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스터시티와 2022~2023 EPL 8라운드 홈 경기.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이 내세운 선발 공격진은 해리 케인-히샤를리송-데얀 쿨루세브스키였다. 지난 시즌 23골 득점왕 손흥민은 새 시즌 들어 골 침묵을 이어갔고 결국 올 시즌 처음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콘테 감독은 3 대 2로 앞선 후반 14분에 히샤를리송을 빼고 손흥민을 넣었다. 이 교체 하나가 살얼음 리드를 6 대 2 완승으로 만들었다. 후반 28분, 손흥민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지난 시즌 최종전 이후 넉 달 만에 EPL 득점포를 가동했다. 수비 2명이 있었는데도 순간적인 속임 동작으로 슈팅 기회를 만들었고 감아 차기로 골문 구석을 뚫었다. 이번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2경기를 포함해 공식 경기 8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던 손흥민의 마수걸이 득점이었다.
지난 8일 챔스 경기 뒤 “한 골만 넣으면 자신감이 생겨서 계속 넣을 것”이라고 했던 손흥민의 말은 족집게 예언이 됐다. 후반 39분 비슷한 위치에서 왼발 감아 차기로 두 번째 골을, 2분 뒤 왼쪽 지역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골키퍼 옆을 뚫는 세 번째 골을 넣었다. 손흥민의 EPL 해트트릭은 세 번째, 독일 시절을 포함해 전 경기를 통틀어서는 여섯 번째다. 6 대 2로 이긴 토트넘은 5승 2무로 EPL 2위를 달렸다. 선두 맨체스터 시티에 골 득실에서 뒤질 뿐이다.
후스코어드닷컴 평점 9.32로 양 팀 최고점을 받고 경기 MVP로도 선정된 손흥민은 “솔직히 말하면 좌절도 있었지만 오늘로 실망감은 사라졌다”며 “A매치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대표팀에 합류해 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과 월드컵 평가전에 나선다.
BBC방송은 손흥민의 이날 활약을 전하며 오랜 격언을 언급했다. ‘몸 상태는 늘 좋을 수 없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Form is temporary, but class is perman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