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은 사람 살리는 일…대가는 보람이죠"

'42년간 735회 헌혈' 전상기 소방경
친구에게 수혈한 이후 꾸준히 임해
취약층 환자에 증서 400장 기증도
부친 보고 자라며 봉사정신 길러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할 것"



“건강이 허락한다면 헌혈을 할 수 있는 법적 연령인 만 69세까지 헌혈을 할 생각입니다. 아내는 이제 헌혈 그만하라고 난리지만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건 제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죠. 또 헌혈을 통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보람된 일 아니겠습니까.”


1일 ‘헌혈왕’ 전상기(사진) 씨는 서울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할 만한 큰 일도 아닌데 부끄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헌혈이 별것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전 씨는 1980년 처음 헌혈을 시작해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670회(비공식 735회) 헌혈을 한 헌혈왕이다. 그는 헌혈을 통한 희생정신을 인정받아 올해 5월에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그는 “정부포상 대상자라고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는데 무엇을 바라서 한 것도 아니라고 (포상 수상을) 거절했지만 꼭 받아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표창을 받게 됐다”며 “저처럼 헌혈을 많이 한 사람들은 뭘 바라고 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잘못 기재돼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는 적십자에 670회 헌혈이 등록됐다. 코로나19에 헌혈 인구가 급감했지만 그는 코로나19 기간에만 30회 정도 헌혈을 했다. 그는 “인터뷰하기 전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몇 번이나 했는지 살펴봤는데 65회가 누락됐지만 횟수나 숫자가 제게는 의미가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처음으로 헌혈을 한 계기는 1980년 군에 입대한 친구가 다쳐서 병문안을 갔다가 수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서다. 병원에 갈 때마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헌혈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는 헌혈 증서도 400장이나 기증해 수혈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돕는 등 끊임없이 선행을 이어왔다. 수혈을 받는 환자가 수혈 비용 중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 한도에서 진료비를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헌혈을 하고 헌혈증을 기부하고 나면 뿌듯할 듯도 하지만 허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백혈병 환자는 조혈모세포가 안 나오면 혈소판 헌혈을 받아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그래서 증서를 많이 기증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허탈한 마음도 들 때가 있다”고 전했다.


광진소방서 진압3대장 소방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전 씨의 미담은 헌혈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오랫 동안 소외 계층에 온정의 손길을 전한 ‘키다리 아저씨’로도 유명하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삶의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제가 특별히 봉사 정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친이 (봉사)하시는 걸 봐왔고 성인이 돼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방소에서 근무하다 보니 소외 계층을 많이 보게 되고 은연중에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돕고 있더라”고 전했다. 그는 헌혈 외에도 소년·소녀 가장 돕기부터 시작해 현재는 다문화 가정 11남매를 돕고 있다. 그는 “구급차를 이용하시는 분들 중에는 소외 계층이 많은데 우연히 소년·소녀 가장들을 만나면서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을 실감했다”며 “소년·소녀 가장들에 이어 다문화 가정 11남매를 돕는데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공무원으로 수십 년을 근무해온 그는 화재 재난 현장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바람도 전했다. 화재 재난 현장의 경우 기계보다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이 휴가도 못 가고 있다. 저도 22일 중 하루만 휴가를 다녀왔고 21일은 반납을 해야 한다”며 “직원들의 휴가 사용은 고사하고 고가의 장비 지원 역시 멈춘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소방의 경우 정원제로 묶지 말고 100%는 아니더라도 80~85%까지라도 인원을 채워줬으면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재난 대응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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