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는 공무원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국민에게) 무슨 정책을 폅니까. 현장 공무원이 정부 정책의 잘못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공직사회가 들끓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론이 공무원 스스로 정책 찬반 투표로 번졌다. 정부는 이 투표를 불허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투표 실시부터 논란이 예상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1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24일 조합원 대상 정부 정책평가를 한다고 밝혔다. 전공노는 "정부 정책에 의견도 표현하지 못하게 하면서 사고가 터지면 모든 책임을 하위직에 떠넘겼다"며 "정부는 공무원을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정권 시녀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투표 취지를 설명했다. 전공노는 전체 공무원 12만명(12%)이 속한 노조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약 12만명)과 양대 공무원 노조로 평가된다.
전공노는 이태원 참사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 파면 및 처벌을 비롯해 내년 공무원 보수인상률 1.7%, 공무원 인력 5% 감축 5개년 계획, 65세 공무원연금 지급 정책 유지, 노동시간 확대 및 최저임금 차등 정책, 사회 및 공공서비스 민영화 정책, 부자 감세 및 복지 예산 축소 정책 등 7개 문항을 정했다. 내년 보수, 인원 감축, 연금, 공공기관 민영화는 공무원 처우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내년 임금 1.7% 인상을 두고 올해 내내 공무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내부 논의 끝에 문항에서 제외됐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파면 및 처벌 문항이 눈에 띈다. 행안부는 정부조직과 이들 공무원의 정원 관리에 관한 종합계획 수립하고 운영한다. 사실상 부처들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공무원의 ‘수장’으로 본다. 최근 소방공무원노조가 이 장관을 이태원 참사 책임으로 고발하는 등 이 장관에 대한 책임론이 공직사회에서 커지고 있다.
전공노의 정책 찬반투표는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공무원의 정치 활동 금지 규정에 어긋날 수 있다. 전공노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정책 찬반투표보다 수위가 높은 대통령 불신임투표를 실시하려다 논란 끝에 결국 철회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공무원연금 개혁 등 주요 정책을 반대하는 투표였다. 당시 행안부는 투표 추진은 품위 유지, 정치 활동 금지 등 역할을 정한 공무원법과 공무원노조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전공노는 이번 정책 투표는 과거와 같은 대통령 불신임투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공무원의 정책 투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호일 전공노 위원장은 "정부는 투표가 정치행위인 동시에 복종 의무 위반이라고 징계한다고 협박한다"며 "모든 국가는 공무원의 정치 표현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무원이 정부 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다면, 박근헤 정부 국정농단과 이태원 참사를 막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