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전까지 주어진 단 4일 동안 준비할 수 있을까, 만 34살 인생에서 가장 고심을 많이 했죠. 그럼에도 하게 된 계기는 ‘베토벤’인 것 같아요. 베토벤의 곡을 많이 연주하면서 쌓은 그에 대한 개인적 생각과 곡 해석, 아이디어를 교향곡으로 옮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예요. 교향곡 9번 ‘합창’은 상임지휘자가 아닌 이상 하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공연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했죠.”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김선욱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한다는 소식은 연말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의 상당한 화제거리다.당초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 14~16일 열리는 서울시향의 송년 공연 ‘합창’을 지휘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낙상사고로 골반을 다치는 바람에 김선욱에게 기회가 돌아간 것. 베토벤 합창 교향곡은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여러 성악가와 합창단이 참여하는 대곡이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지만, 지휘 2년차에 대곡을 맡는 건 다른 이야기다.
김선욱은 13일 리허설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지난 4일간 하루 14~15시간씩 악보를 해석했는데, 이렇게 온 영혼과 정성을 다 들였던 작업이 얼마만인가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서울시향으로부터 지휘를 제안받은 건 국내 일정을 마치고 독일 집으로 돌아가려고 7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서울시향이 벤스케로부터 6일 오후 부상 소식을 들은 후 국내 지휘자를 중심으로 대체자를 물색했고, 8월 광복절 기념 공연 당시 지휘를 맡았던 김선욱도 그 중 하나였다. 외국인 지휘자는 비자 문제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는 “수락하고 호텔방에 도착하니 이미 악보가 와 있었다. 점심을 먹고 4일간 자가격리 수준으로 악보를 연구했다”고 돌아봤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상당한 준비를 했다. 10년 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며 베토벤의 음악세계를 이해했던 게 상당한 도움이 됐다. 리허설을 통해 오케스트라와 소통하면서도 많은 것을 정리했다. 성악가, 합창단에게도 뭐든지 습득할 준비가 돼 있으니 많이 알려주고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대해 “초등학생 시절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휘하고 싶었던 곡”이라고 말했다. 어떤 해석을 들려줄 것인지 묻자 그는 “단원들께 내가 귀가 안 들린다고 상상했을 때, 마음 속 음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며 “베토벤의 곡은 본능적으로 즐기려고 하면 연주하는 입장에서 위험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선욱은 “작년부터 지휘를 본격 시작했으니 신인이라는 시선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신인 지휘자가 맞다”고 말했다. 해외 에이전트는 작년 10월에야 김선욱이 지휘자로도 나선다는 사실을 알렸고, 소속사에서도 길게 보는 사안이다. 멘토로 삼는 정명훈 지휘자도 김선욱에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조언을 남겼다. 피아니스트로서도 할 일이 많은데 지휘자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는 “후회 없이 하려고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 자체로 어릴 적 꿈을 이뤘기에 불만이나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지휘에 내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피아노든 지휘든 똑같이 음악을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만드는 행위”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