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서울은 미술관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





나는 매일 아침 미술관으로 출근한다. 여가의 중심에도 늘 뮤지엄이 있다. 주위 대부분의 뮤지엄 종사자들 또한 비슷한 삶의 양식을 가진다. 관심사에 따라 직업을 찾고 그렇게 직군에 따라 비슷한 삶의 패턴을 영위하는 것은 현대인의 특징 중 하나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심사와 기호의 교집합 자체가 ‘경계’가 돼버리기도 한다. 사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현상은 더욱 극대화됐다.


미국 시민단체 ‘무브온(Move on)’의 엘리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인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통해 ‘사용자에게 맞게 필터링된 정보가 마치 거품(버블)처럼 사용자를 가둬버린 현상’을 지적한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를 거치며 우리 각자의 버블은 보다 견고해진 듯하다. 스스로 갇힌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명한 버블 속에 보내고 있는 것일까. ‘버블’과 비슷한 개념으로는 미국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이 칭한 ‘에코챔버 (Echo Chamber)’가 있다. 현대인이 자신과 비슷한 입맛과 기호를 가진 콘텐츠와 정보만 소비하다 보면 편협한 시각에 빠지게 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 어려워 단절과 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각자의 버블에서 한발씩 나올 수 있을까. 이제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자. ‘버블’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연관돼 있다. 서울시는 몇 해 전부터 ‘서울의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된다’는 취지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시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 도시는 뮤지엄이라는 것이다. 뮤지엄은 예술을 통해 일상에서 한걸음 벗어나 삶을 성찰하며 나아가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고 시대정신을 표현하기에 이와 같은 속성을 도시 공간에 연결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므로 뮤지엄이야 말로 우리 각자의 버블이 모이고, 모여서 터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일 것이다.


서울에는 아름다운 미술관이 참 많다. 서울 동네 곳곳 미술관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미술관 주변의 볼거리 또한 풍성하다. 서울 성곽과 노을을 즐길 수 있는 부암동 언덕 위의 목인박물관이나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는 성수동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공장 지대 속 헬로우뮤지움이 그렇다. 옛 풍문여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안국동의 공예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 앞 공원에서 보았던 옛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다.


이론상 버블은 결코 스스로 탈출할 수 없는 알고리즘 구조라고들 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작은 습관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미술관 안에서 밖으로, 나의 안에서 밖으로 조금씩 나가보자. 나의 경우 ‘미술관’이라는 고정관념들에 질문을 던지고 시선을 돌려보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버블밖 세상에도 즐길 것이 참 많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