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아트레터]자신이 본 뉴욕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

뉴욕 휘트니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
사실주의 호퍼가 바라본 20세기 뉴욕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Morning Sun’(1952). 호퍼는 1940~50년대 실내 창문 앞에 서 있거나 앉아있는 인물을 다수 그렸는데, 미니멀하게 표현된 공간 속 홀로 배치된 인물은 산업화가 한창인 도시인 삶의 이면을 드러내준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는 살아생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는 뉴욕”이라 말한 만큼 뉴욕에 애착을 가졌다. 세상을 떠나던 1967년까지 60여 년의 오랜 세월을 오로지 뉴욕에서 보냈던 호퍼와 도시 뉴욕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랬던 호퍼의 회고전이 현재 뉴욕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에드웨드 호퍼의 뉴욕’이라는 주제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호퍼의 초기 및 후기 작품들이 드로잉, 페인팅, 스케치, 일러스트 등 다양한 평면 매체로 전시중이다. 작품에는 호퍼의 시점에서 바라본 100여 년 전 20세기 뉴욕 풍경들이 담겨있고, 다양한 각도에서 이를 감상할 수 있는 신선함이 있다. 당시 무명이던 호퍼의 첫 공식 개인전을 주최한 것이 현재 휘트니미술관의 전신인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 (Whitney Studio Club)이었기에 이번 전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1920년대 본격 전업작가로 돌아서기 전 에드워드 호퍼는 상업용 일러스트를 제작하는 삽화가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후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밑거름이 된다.

1882년생인 호퍼가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활동한 시기는 그가 갓 마흔을 넘긴 1920년대 초반이다. 그전까지는 생계를 위해 상업용 일러스트를 그리는 삽화가를 병행했다. 호퍼는 뉴욕 도심의 식당, 극장, 사무실, 사람들의 풍경을 기업에서 발행하는 잡지 표지 디자인에 담아냈다. 이는 훗날 호퍼의 페인팅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로 발전한다. 1915년부터 1920년대 초까지 호퍼는 에칭 기법에 매료돼 많은 판화 작품을 제작했다. 호퍼는 판화를 통해 평면에 절묘하게 인물과 공간, 빛과 그림자를 배치하는 법을 연구한다. 이같은 과정들이 나중에 호퍼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다.


호퍼가 본격적으로 페인팅을 시작한 1920년대 뉴욕은 산업화로 인해 도시 풍경 자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크라이슬러 빌딩 등 현재 뉴욕 스카이라인을 상징하는 고층 건물들이 전부 이 시기에 완공됐다. 더불어 뉴욕은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희망을 꿈꾸며 이주해 온 사람들로 붐볐다. 화려한 경제 부흥기에 역동적이면서 매혹적인 소재들이 많았음에도 호퍼는 다소 냉소적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호퍼의 언어로 재해석된 뉴욕의 풍경들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구성과 시점을 경험하게 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수직적으로 솟아있는 고층 건물들에 집중하기보다 낮고 수평적인 뉴욕 풍경에 초점을 맞춘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뉴욕 풍경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호퍼는 고층 건물들이 수직적으로 즐비한 맨해튼 도심보다 낮은 건물들이 있는 거리와 수평으로 길게 뻗은 다리 같은 풍경에 관심을 가진다. 대다수가 높게 솟아오른 빌딩 숲 위를 우러러볼 때, 호퍼의 좌우로 넓게 펼쳐진 뉴욕 풍경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긴 수평 페인팅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1930)’을 포함한 5점을 볼 수 있다.


뉴욕의 인구 밀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한정적인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도시 내 사적인 공간의 영역은 축소됐고, 창문 너머로 엿보이는 이웃집 풍경은 익숙해졌다. 이에 호퍼는 자신의 그리니치 빌리지 아파트 창문에서 바라본 사적이면서도 은밀한 이웃집 공간을 담아낸다. 호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창문은 본인의 사적인 공간을 넘어서 타인의 공간까지 확장하는 매개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시된 작품 ‘밤 창문들(Night Windows·1928)’은 이러한 밀집된 뉴욕의 이면을 잘 드러낸다. 그림 속 어두운 밤은 조명이 켜진 이웃집 내부를 더욱 부각시킨다.



1928년작 '밤 창문들(Night Windows)'은 도시 내 사적인 영역이 축소된 뉴욕 사람들의 삶 이면을 잘 드러낸다.

작가 인생의 후반기에 해당하는 1940~50년대 작품들도 흥미롭다. 이 시기 호퍼는 실내 창문 앞에 서 있거나 앉아있는 인물의 페인팅을 다수 제작했다.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호퍼의 최대 걸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이 이 시기에 제작됐다. 호퍼는 미니멀하게 표현된 공간에 배치된 인물들에 의도적으로 강한 빛을 주었고, 이는 마치 연극에서 극적인 연출을 보는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감정이 결여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는 인물의 모습은 도시인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여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호퍼의 부인인 조세핀 호퍼(Josephine Hopper)다. 호퍼의 성공 뒤에는 조력자 조세핀이 있었다. 조세핀은 작품 모델부터 전시 스케줄 관리 등 디테일한 업무로 호퍼를 적극 지원했다.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 회고전은 오는 3월까지 열리고 이후 4월부터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국내 관람객과 만날 예정이다.

호퍼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20세기 초·중반 유럽 미술계에서는 아방가르드 운동이, 미국 미술계에서는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호퍼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뚝심있게 뉴욕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 결과 당시에는 큰 주목을 못 받았더라도 오늘날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됐다. 기업의 광고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휘트니미술관 회고전은 3월까지 열리고 이후 4월부터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국내 관람객들에게도 선보일 예정이다. 호퍼의 20세기 뉴욕 풍경이 국내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사뭇 궁금하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필자 엄태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아트비즈니스 석사를 마친 후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에서 근무했다. 현지 갤러리에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뉴욕이 터전이 되었기에 여전히 그곳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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