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대목이라는 말은 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채소류 도매상인 김 모 씨)”
20일 오전 5시 30분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은 서울 강서구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새벽 경매가 끝난 후 과일·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찾아올 시간이었지만 상품을 정리하는 상인들만 분주히 움직였다.
시장을 찾은 자영업자들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사과·배 등을 판매하는 최 모(62) 씨는 “예전 같으면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새벽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시작된 후인 것 같다. 명절이라고 판매량이 이전처럼 크게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가게 한구석에 쌓인 백여 장의 명절 선물용 보자기가 민망하게 반짝였다.
전통적인 명절 대목에도 도매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것은 고물가 상황에다 경기 부진으로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자물가지수는 2021년 대비 8% 상승하며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농산물 8.2%, 수산물 3.1%가 올랐다. 배추와 무를 판매하는 도매상인 김 모(51) 씨는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해 채소 가격이 50%는 오른 것 같다. 나 같아도 구매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푸념했다.
과일을 판매하는 도매상인 김 모(48) 씨도 “10만 원했던 과일 세트가 올해는 15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고 보면 된다. 구매하는 입장에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부 도매상인들은 “장사도 안 되는데 뭘 그런 걸 다 묻냐”며 답답함을 표하기도 했다.
명절 문화가 급변하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친·인척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하던 명절 문화는 최근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집에서 휴식을 즐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이날부터 24일까지 5일 간 약 61만 6074명, 일평균 약 12만 3215명의 여객이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여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설 연휴 대비 1291% 증가한 수치다.
도매상인 박 모(40) 씨는 “제사에 필요한 농축수산물 구매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대규모 외식을 하는 가정도 감소했다”며 “단골 고객이던 자영업자들만 봐도 연휴 기간 대부분 장사를 하지 않는다. 인건비는 높고 손님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7시까지도 손님이 없자 몇몇 도매상인들은 가게에서 식사를 하거나 즉석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애먼 바닥만 쓰는 상인들도 있었다. 가게 앞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던 도매상인 최 모(51) 씨는 “지난해 추석에도 매출이 실망스러웠던지라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올해 설은 그 이상이다. 평년에 비하면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