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은 입천장에 (빵이) 낄까 봐 마음껏 먹지 못했대요. 이제 좋아하는 바게트를 많이 먹을 수 있겠다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수술 후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 다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백롱민(65)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이끄는 ‘세민얼굴기형돕기회(Smile For Children)’는 1996년부터 매년 베트남을 찾아 얼굴 기형으로 웃음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고 있다. 25년 동안 한결같이 의료봉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백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2007년 베트남 응에안의 빈아동병원에서 만났던 응옥화(7) 양의 환한 웃음이 떠오른 모양이다. 백 교수는 “처음부터 장기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며 “베트남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 해 한 해 이어오다 보니 올해 26년 차가 됐다”고 했다.
어린아이에게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진 구순열·구개열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그 즐거움이 허락되지 않는다. 윗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져 있어 아기 때는 젖을 빨면 입 밖으로 모두 흘러넘치고 밥을 먹으면 갈라진 입천장으로 들어가 코로 나오기 일쑤다.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또래 아이들보다 체구도 훨씬 작은 데다 외모와 발음 문제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이번 수술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는 이런 소소함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속 울림은 매년 여름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게 백 교수의 전언이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얼굴 기형 수술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이 한국 의료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들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몰려온다”며 “구순·구개열이 가장 많고 손가락이 서로 붙은 합지증 환자나 날 때부터 눈꺼풀이 처지는 안검하수가 심해 눈을 뜨기조차 힘든 어린이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백 교수의 열다섯 살 손위 형인 백세민 박사(당시 백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설립한 재단이다. 안면 윤곽 수술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였던 백세민 박사는 1989년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얼굴 기형 어린이들에게 무료 수술을 해줬다. “형님이 워낙 큰 산 같은 존재라 닮고 싶었다”는 백 교수는 초보 의사 시절부터 형을 따라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얼굴 기형 환자들의 고충을 피부로 느꼈다. 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생아 500명당 1명꼴로 얼굴 기형이 나타난다. 이들은 놀림을 당할까 봐 외부 접촉을 극도로 기피한 채 집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다. 백 교수는 “우리나라는 얼굴 기형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지나치게 외모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얼굴이 조금 다를 뿐 정신적·육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정상적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형제는 7년간 국내에서 4600명이 넘는 얼굴 기형 어린이를 진료했다. 그중 1200여 명이 수술을 받았다.
국내 봉사를 이어가던 어느 날 우연히 주한 베트남대사로부터 베트남 현지에 수술을 받지 못해 고통받는 얼굴 기형 어린이들이 많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베트남과의 수교는커녕 베트남전으로 인해 해묵은 앙금이 가시지 않았던 시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베트남 의무사령부 관계자를 소개받고 당시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았던 SK그룹이 재정 지원에 나서면서 기적처럼 베트남 현지에서 수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물론 순탄한 여정은 아니었다. 사전 준비에 소요된 기간만 6개월. 베트남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홍콩을 경유하느라 12시간을 비행해서야 겨우 하노이에 도착했다. 일정은 짧은데 현지 병원은 수술방 냉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고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은 너무도 많았다. 이른 아침에 수술을 시작해 저녁 늦게서야 마치는 강행군을 지속한 결과 일주일 만에 200명의 아이를 수술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가능하면 내년에도 또 와주시겠습니까.” 열흘에 수술 100건도 기적이라던 베트남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건넨 말이다.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이고 귀국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백세민 박사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건강 문제로 더 이상 업무를 진행할 수 없게 된 형의 뒤를 이어 백 교수가 세민기형얼굴돕기회를 이끈 게 어느덧 26년 차다. 형제가 함께 베트남 땅을 밟았던 1996년부터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빠짐없이 베트남 방문을 이어오고 있다. 하노이에서 처음 시작해 50개 지방자치단체 중 14곳을 도는 동안 백 교수팀으로부터 안면 기형 수술을 받은 베트남 어린이는 총 4161명에 달한다.
일일이 이름을 외우지는 못해도 백 교수는 수술 후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어제 본 듯 생생하다. 2000년 한 시민단체의 주선으로 찾아온 타잉(20)과의 첫 만남은 유독 잊히지 않는다. 열 살 때 수류탄을 갖고 놀다가 터져 상반신 전체에 3도 화상을 입었다는 타잉은 수많은 얼굴 기형 환자를 겪었던 백 교수가 보기에도 심한 편이었다. 10년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된 탓에 턱과 가슴이 붙어버려 마취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현지에서는 수술할 여건이 안 된다”는 의료진의 말에 실망하는 타잉에게 백 교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묻는 말에도 짧게 겨우 몇 마디 하는 모습을 보니 ‘민감한 사춘기 시절을 그런 모습으로 보내며 상처를 많이 받았겠구나’ 싶어 마음이 쓰였다. 다음 해 2월 백 교수는 타잉을 한국에 초청해 내시경으로 마취한 뒤 1차 수술을 했다. 이후 베트남을 찾아 두 차례 추가 수술을 한 끝에 본래 얼굴을 되찾아줬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장성한 청년이 된 타잉은 직접 농사지은 땅콩 한 봉지를 손에 들고 찾아와 ‘직장을 구했고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백 교수팀이 하노이를 시작으로 매년 베트남의 50개 지자체 중 다른 지역을 찾아가는 건 이토록 간절한 아이들의 기다림을 알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단 한 번의 수술로 그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신념으로 매년 베트남에서도 가장 덥다는 여름방학 시기에 맞춰 수술 일정을 짠다. 그러니 코로나19로 베트남 국경이 막혔던 2년 동안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는 “25번을 갔어도 여전히 가지 못한 지역이 더 많다”며 “하루 10시간 이상씩 수술해도 (수술을) 마칠 때마다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올해는 7월 중 호찌민시 동쪽에 있는 빈투언 지역을 찾을 예정이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베트남을 방문할 때마다 마취기, 전기소작기, 모니터링 기기 등 수술 중 사용하는 장비와 수술 재료 등을 한국에서 실어와 현지 병원에 기증하고 돌아온다. 모든 아이들을 직접 치료할 수 없기에 현지 의사들을 교육시켜 그들이 환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베트남 의사들에게 현지 수술장을 참관하게 할 뿐 아니라 분당서울대병원에 초청해 6개월~1년씩 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한국에서 수련을 받고 간 베트남 의사들은 현지에서 성형외과 중진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소망은 한 핏줄인 북한의 얼굴 기형 어린이들에게도 수술을 통해 웃음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북한 의료봉사를 꿈꿨지만 남북 관계 변화로 매번 좌절됐다. 백 교수는 “(얼굴 기형 어린이를 위한 봉사는) 매년 하는 일인데도 늘 설렌다”며 “체력이 다할 때까지 얼굴 기형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He is
△1958년 부산광역시 △부산 동아고 △서울대 의과대학 △2014년 오드리헵번인도주의상 △2016년 베트남 국가우호훈장 △2017년 서울대 의과대학 성형외과 주임교수 △2016년 분당서울대병원 연구부원장 △2019년 분당서울대병원장 △2020년 대한성형외과학회 회장 △2021년 닥터앤서2.0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