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일반 병원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40명 넘는 환자를 돌봐야 합니다.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든 신규 간호사들까지 제외하고 나면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해집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7년 동안 병원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고충을 고스란히 담은 에세이 ‘밑바닥에서’를 출간한 김수련(32·사진) 간호사는 서울경제와 만나 “다시 태어난다면 이 일만은 하지 않고 싶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한국에서 대형 병원의 암 병원 중환자실을 맡았던 김 간호사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대구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뉴욕시립대 외과계 외상센터 중환자실(ICU)에서 일하고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운영위원 등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가 밝힌 우리 간호사들의 현실은 처참할 정도다. 한국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1명은 16.3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일반 병원은 더 심해 43.6명에 이른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8명)보다 최대 7배나 많다.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간호사는 “이 정도면 죽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할 정도”라며 “기적이 있다면 이런 게 기적”이라고 허탈해했다.
간호사가 처한 열악한 환경은 코로나19가 전국을 덮쳤을 때 민낯을 드러냈다. 국내에서는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자평했지만 간호사들이 경험한 실태는 이와는 정반대였다고 한다. 특히 환자를 수용한 병원은 쓰레기장 그 자체라며 몸서리를 쳤다.
김 간호사는 “코로나19 환자를 두 시간씩 돌보는데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밀려오고 주변 환경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보니 의료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며 “결국 환자 주변은 쓰레기장이 되고 감염 관리도 제대로 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러니 간호사들이 버틸 도리가 없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간호사가 새로 들어와도 3~5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게 비일비재하다. 그들이 그만두면 나머지는 기존 인력이 떠안아야 한다. 이들 역시 죽을 만큼 힘든 일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을 떠나고는 한다. 퇴직이 격무를 낳고 그것이 다시 퇴직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는 “간호 인력의 퇴직이 얼마나 심한지 중환자 병동조차 새 간호사의 비율이 40% 이상을 넘지 않도록 매일 안간힘을 쓰고는 했다”며 “이런 환경이라면 다시 태어나도 절대 간호사라는 직업은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김 간호사가 꼽은 문제의 근원은 공공병원의 부재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은 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사립병원이 담당하고 있다. 공공병원의 비율은 OECD 평균인 75%는 물론 미국의 25%와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립병원이 의료 시스템을 장악하는 곳에서 최고의 가치는 수익이다. 김 간호사는 “병원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전체 비용의 60~70%가 인건비로 나가고 이 중 절반가량이 간호사의 몫”이라며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비용을 최소로 줄여야 하는데 그 부담이 고스란히 간호 인력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려면 국가 의료 체계 전반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점이다. 사립병원의 반발은 물론 의료 시스템 혼란도 나타날 수 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간호사 1인당 환자 비율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김 간호사는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료법 개정은 말만 예쁘게 고쳐놓은 것에 불과한 의미 없는 것”이라며 “간호사들이 환자의 항상성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인력 구조 개선을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관대함’이라고 지적했다.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관용을 베푼다면 의사와 간호사가 싸울 일도, 병원과 환자가 대립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김 간호사는 “환자가 간호사에게 화를 낼 때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면 저럴까’ 하고 생각한다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각박함을 떨치고 관대함을 그 자리에 대체한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