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는 1962년에 조성된 울산공업기지(현 울산산업단지)다. 이후 여수(1967년), 구미(1969년), 반월(1978년) 등에도 산단이 건설되면서 우리나라 산단은 총 1264곳까지 불어났다. 이들 산단은 고용 인원만 227만 명에 달하며 매년 1000조 원 이상의 제조업 생산을 책임진다.
그러나 산단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입지 규제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노후화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산단의 특성상 적재적소에 인프라를 투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2일 정부가 금융자본 등을 포함한 민간의 산단 투자 등 전반적인 산단 규제 완화책을 강구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특히 산단 입주 기업들이 금융기관을 비롯한 민간 투자 기관을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아직은 임대·매매 규제에서 금융기관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거시적 방향성만 정해진 상태다.
그러나 단순 산단 시설 개보수뿐 아니라 다양한 방안에서 금융자본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자본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한 관계 부처 관계자는 “투자 가능한 기관을 어디까지로 규정할지와 함께 민간 자본 활용 방안이 남용되지 않는 장치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정부는 산단 용지가 실수요자에게 분양될 수 있도록 입주 기업 공장 등에 대한 임대·매매를 엄격히 관리했다. 기업이 산단에 용지를 분양받고 공장 설립 완료 신고 후 5년 이내에 매각을 원할 경우 산업단지공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원래 산단은 국가가 조성원가로 민간기업에 분양하는 것”이라며 “이는 실수요자인 기업들이 최대한 저렴하게 입주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만약 민간 업자가 산단에 있는 땅을 사서 비싸게 팔거나 임대하면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어려워 매매·임대에 제한을 둬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산단 인프라가 점점 노후화하면서 적극적인 민간자본 유치 등 입지 규제 완화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준공 후 20년이 넘은 국가·일반산단은 2021년 124곳에서 2031년 236곳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낡은 인프라는 기업 유치에도 걸림돌이었다. 산단에 입주한 기업 중 94.3%가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다. 금융자본 유치를 통해 공단 입주 기업의 자산 유동화를 원활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더스트리얼리츠(산단리츠)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리츠협회는 지난해 12월께 법무법인 태평양에 맡긴 산단리츠 법률 개정안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국토교통부와 산업부 등 유관 부처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자본의 산단 투자 여부까지 논의 대상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산단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산단 입지 규제는 크게 △업종 △용도구역 △매매·임대 규제로 나뉜다.
정부는 이 세 가지 규제 모두 개선 대상으로 보고 산단공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차전지 제조 업체는 전자·섬유 분야로 입주 업종이 제한된 산단에 들어올 수 없는데 산업 환경 변화를 고려해 이 같은 애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관계 부처 합동으로 ‘산단 혁신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오래된 산단 중에는 50~60년이나 되는 곳도 있다”며 “산업화 시대에 세팅했던 제도가 계속 유지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들이 업종 규제 등으로 산단 입주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산단 입지 규제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규제 개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려면 부처 간 협업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단 입지 규제는 크게 산업입지법·산업집적법으로 나뉘는데 각각 국토부와 산업부가 주관한다. 규제 완화에는 부처 간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참여하는 한 인사는 “산단 정책에는 국토부·산업부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고용노동부 등 상당히 다양한 부처가 관여한다”며 “그간 산단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산단이 국가 제조업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처 간 협업 활성화가 1차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할 경우 범부처 차원의 마스터플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실질적으로 산단 네거티브 규제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어 이에 대한 보완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