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오롯이 전도연 배우와 함께하고 싶었어요”
청부살인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길복순은 오로지 배우 전도연을 위한 캐릭터다.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스페셜 부문 초청작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이 전도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전에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액션으로 풀어냈다. ‘킬 빌’을 연상시키는 영어 제목 ‘Kill Boksoon’부터 호기심을 끈 이 영화는 지난달 18일 독일 베를린 베르티 뮤직 홀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에서 관객을 제대로 압도했다. 연예매체 ‘데드라인’의 평처럼 일상 코미디 요소의 활용까지 쿠엔틴 타란티노풍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길복순’이란 캐릭터는 그 이상을 기대하게 했고 더 보고 싶게 만들었다.
베를린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사인 공세를 받은 변성현 감독은 “전도연 선배님을 보면서 배우, 엄마로서의 모습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내적 갈등을 접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가장 모순된 상황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킬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에 관해 묻자 변 감독은 “한국적인 ‘언어유희’에서 나온 것”이라며 “원래 이름은 복순이 아니었고 제목도 ‘무제’였다. 이 정겹고 예스러운 이름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전도연) 선배님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에서 착안한 거다. 액정화면에 ‘복순 이모’라고 떴고 직관적으로 제목이 정해졌다. 물론 장난스러운 반대가 있긴 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칸의 여왕’ 전도연표 킬러 액션은 군더더기 없다. 유혈 낭자한 잔혹성을 드러내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하다. 청부살인업체 MK 엔터 소속 탑 킬러인 길복순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고교생 딸 재영(김시아 분)을 위한 ‘은퇴’ 고민 때문이다. 초A급 킬러와 싱글맘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길복순을 열연한 전도연은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었다. ‘밀양’ 이후 일정한 틀에 갇혀 더 어둡고, 더 깊고, 더 진지한 작품들이 계속 들어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답답했다. 그 안에서 떠나고 싶어 오랜 시간 기다렸다. 다행히 감독님이 저를 놓고 길복순이라는 시나리오를 써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변 감독과는) 개인적 친분이 있어서 현장에서 편하고 즐거울 거라 생각했는데 매 순간마다 서로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다. 이런 점들이 한계를 넘어서고 배우 전도연의 이미지를 깨주었다고 생각한다”며 만족을 표했다. 하지만 앞으로 액션 배우로 거듭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단언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었다는 전도연의 언급은 영화를 보면 짐작된다. 변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긴 액션 장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카메라는 전도연의 얼굴에 집중하면서 그래픽 소설 같은 액션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킬 복순’을 이행하려는 한의성(구교환 분) 등 동료 킬러들과 단골 술집에서 벌이는 결전은 프라이팬, 맥주병, 젓가락까지 난무한다. 또, 대결 상황마다 어떻게 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경우의 수를 길복순이 머릿 속에 그려내는 장면들은 다각도 촬영으로 보여준다. 자신을 킬러의 세계로 이끈 MK엔터 대표 차민규(설경구 분)와의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최후의 접전은 황홀한 액션의 대미를 장식하기 충분하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로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변성현 감독의 범죄 액션 영화 ‘길복순’은 오는 3월3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HFPA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