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하는 등 국가 재정범죄 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세금을 포탈하거나 국가보조금, 지원금 등을 부정 수급하는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계좌추적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유진승 서울북부지검 국가재정범죄합수단장은 서울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국가 재정범죄의 최근 특징을 △조직화 △대형화 △진화 등 세 단어로 압축했다. 이들 범죄가 다수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지면서 수법도 차츰 교묘해지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페이퍼검퍼니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래로 금융자료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등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일부는 위장 사무실을 만드는 등 증거인멸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단장이 '국가 곳간’을 좀 먹는 재정범죄를 신속하게 수사해 발본색원하기 위한 법·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국가재정범죄합수단(합수단)은 조세·관세 포탈은 물론 각종 국가보조금, 지원금 부정수급 등 범죄를 수사하는 곳이다. 검사와 수사관,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 범정부 전문 인력 30명으로 지난해 9월 30일 출범했다. 애초 대검찰청은 서울북부지검에 조세범죄합수단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수사 대상을 국가 세입·세출 관련 재정범죄로 확대했다.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국가 재정범죄에 대한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합수단은 출범 후 수개월 만에 태양광 발전시설 대표 등 총 38명을 입건했다. 특히 태양광 산업·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구축 사업 비리를 수사해 5명을 구속 기소하고, 관련 자산 66억원도 동결했다.
유 단장은 “국무조정실에서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 사업 관련 비리 혐의자 100여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해 일부 사건이 합수단에 배당됐다”며 “우선 5개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주범들을 구속하고, 현재 사건 관계자 30여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범죄가 2019년께부터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를 비춰 봤을 때 비리 구조의 폭이 넓고 견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랜 기간 이어진 비리인 만큼 범죄가 한층 조직적이고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재정비리에 따른 범죄수익이 암호화폐로 자금세탁되는 정황까지 일부 포착돼자산 동결 등 대처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가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장 재직 시절, 검찰에서 해외 소재 다국적 암호화례거래소와 직접 소통해 10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동결한 전례와 같이 최대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 단장은 “글로벌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의 경우 원칙적으로 소재 국가와 형사사법 공조를 통해 동결 조치에 나서지만, 대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이 경우 암호화폐 보존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와 협조관계를 수립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 재정범죄 특징상 복잡한 자금 추적을 거칠 수 밖에 없다”며 “법률·제도상 계좌추적 영장을 법원에서 순차적으로 발부받아 집행·추적하다보니,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최초 자금이 유입된 계좌에 한해서만 영장을 발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연결된 계좌까지 포함해 영장을 발부하는 사레도 있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상 연결계좌의 범위를 상당히 제한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경우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없어 최소한 재정범죄나 금융범죄 등 복잡한 자금세탁 수법이 동원되는 일부 범죄에 한해서는 전체적인 자금의 흐름을 하나의 영장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포괄적 계좌 추적 영장을 발부하도록 제도가 개정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신속한 수사로 재정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합수단이 이미 구축한 국세청, 관세청, 금감원, 예보와의 협업 체계에 더해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유기적 협조 관계 수립, 포괄적인 계좌 추적이 가능하도록 하는 영장제도의 완화 등까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 단장은 마지막으로 “합수단에 있어 중요한 과제는 앞으로 수사 효율성과 전문성을 갖춰나가는 것”이라며 “합수단의 규모도 수사 노하우와 함께 유관기관 과의 공조 사례가 축적되다보면 자연히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활한 수사를 위해 앞으로도 국세청, 관세청, 금감원, 예보 등 유관기관과 소통해 나갈 것”이라며 “합수단에서 다뤘던 국가재정범죄에 대한 자료를 데이타베이스(DB)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