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KT(030200) 대표이사 후보가 끝내 사퇴를 결정하며 KT 경영권 공백 사태가 현실화됐다. 당장 31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까지 새 대표 후보를 선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치권 외압에 대표가 연달아 낙마하며 국내 대표 통신기업 KT가 휘청이고 있다.
27일 KT는 윤경림 사장이 차기 대표이사 후보에서 사퇴하겠다는 결정을 이사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윤 사장은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CEO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사퇴 이유를 전했다. 윤 사장은 지난 22일 이사회와 만나 사퇴 의사를 밝혔다. 당시 윤 사장은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며 사의를 전했다고 한다. 이후 이사회는 “주총까지는 버텨달라”며 주말까지 윤 사장을 필사적으로 만류했으나 끝내 사퇴의사를 꺾진 못했다.
윤 사장의 사퇴 소식에 앞서 CEO 공모에 지원한 후보 중 일부는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KT 출신인 권은희 전 의원은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재도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KT의 경영공백이 큰 상황에서 KT를 잘 아는 사람, 현재 문제를 빨리 해결할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력 후보로 언급됐던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전문성 있는 사람이 경영을 맡아야하지 않나 싶다”며 재도전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윤 사장은 선임 과정부터 잡음에 시달렸다. 33인의 지원자 중 최종 4인을 압축한 쇼트리스트 발표 직후부터 정치권 공세가 시작됐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최종 후보 4인 중 KT 외부 인사가 없다는 이유로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수법”이라고 공격했고, 대통령실까지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며 압박했다.
이에 윤 사장은 윤석열 대선캠프 출신 사외이사를 영입하고, 윤 대통령 충암고 동문을 KT스카이라이프 대표에 내정했지만 이들마저 사퇴했다. 최대주주 국민연금의 ‘비토’가 예정된 와중 2대 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도 돌아섰고, 3대 주주인 신한은행도 국민연금과 같은 노선을 탈 가능성이 높았다. 지난해 말 기준 KT 지분구조는 국민연금 10.35%, 현대차그룹 7.79%, 신한은행 5.58%, 소액주주 57.36%다.
KT 이사회의 한 관계자는 “윤 사장이 대표이사 내정 후 국민연금을 설득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최근 며칠 간 ‘노력이 전혀 안 먹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며 “개인주주들의 찬성표를 확보하는 것도 힘들다고 판단한 듯했다”고 전했다.
KT 정기 주총은 오는 31일 예정대로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대표와 사외이사 선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다. 당장은 구현모 현 KT 대표와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 사장이 CEO 직무대행을 맡을 공산이 크지만, 이들도 정상적인 리더십을 지니기는 힘들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KT는 지난해 말부터 임원 인사를 확정하지 못해 신년 경영 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했다”며 “CEO 리스크 속에 한 해의 절반을 날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사회가 새 대표 후보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달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주주추천’을 통한 CEO 선임 시나리오도 언급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특정 CEO 후보를 추천하지는 않고, 타 주주들이 후보를 추천한다면 이에 대한 찬반 여부만 논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표 후보를 뽑을 사외이사진도 불안정하긴 마찬가지다. 사외이사 중 3명을 제외하고는 이번 주총에서 임기가 끝난다. 임기가 끝나는 이사들의 1년 재선임안이 올라와 있지만 이들 또한 사퇴하거나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 후보가 연속 낙마하며 KT 내부에서는 이사회에 대한 비판도 나와 혼란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KT 제1노조는 23일 “현재의 경영위기 상황을 초래한 이사진은 전원 사퇴해야 한다”며 비상대책기구 운영을 요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