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을 받으면 100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는 중국산 전기자동차가 국내에 상륙한다. 가성비로 중국 내수 시장을 휩쓴 중국 전기차가 동일한 판매 전략을 내세워 한국 시장을 잠식하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하는 사이 우리의 안방을 중국 전기차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수입 업체인 이브이케이엠씨(EVKMC)는 장링자동차(JWC)와 체리자동차의 승용 전기차 4종을 국내에 들여온다. 국토교통부의 인증 절차가 끝나는 5월부터 시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VKMC가 선보이는 전기차는 장링의 EV3와 체리의 EQ1, EQ1프로, QQ 등이다. 4인승 소형 해치백인 EV3는 전장(길이) 3720㎜, 전고(높이) 1535㎜로 차체가 현대차(005380) 캐스퍼보다 크다. 31.9㎾h LFP(리튬인산철)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중국 기준으로 최대 302㎞를 주행할 수 있다. 국내 인증 시 주행거리는 200㎞ 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EQ1과 EQ1프로는 기아(000270) 모닝과 동급인 경형 전기차이며 QQ는 이보다 덩치가 더 작은 초소형 전기차다.
국내 판매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으면 차종에 따라 1000만 원 초반에서 2000만 원 초반에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사한 크기의 국내 내연기관 차종으로는 캐스퍼 밴(1300만 원)과 포터EV(2000만 원 후반) 정도가 있다.
우선 EVKMC는 이들을 중국에서 완성차 형태로 수입하고 추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요를 확보하면 군산에 있는 국내 공장에서 반조립 형태로 생산해 판매할 예정이다. 시장의 반응을 살피며 중형 승용차와 승합차 등으로 제품군도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완성차 업계가 글로벌 시장 진출에 매달리는 사이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중국산 전기차가 연이어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며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전기차의 진출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중국산 저가 전기차는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 시장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EVKMC는 지난해부터 중국 동풍소콘의 전기트럭과 밴을 국내에 출시해 1300대 넘게 판매했다. 상용차 운전자들 사이에서 ‘적당한 가격에 쓸 만한 자동차’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단종된 한국GM 다마스·라보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전기버스 시장에서도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절반을 넘어섰다.
중국산 저가 승용 전기차가 현대차 아이오닉5나 기아 EV6와 경쟁하기는 어렵겠지만 국내에 전무한 가성비 전기차 시장을 개척할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현재 국내에 시판 중인 승용 전기차는 중형차급 이상이 주를 이룬다. 경·소형 전기차는 르노코리아가 수입해 판매하는 조에가 유일하다. 과거와 달리 중국 제조사의 품질과 기술력이 개선된 점 역시 수요를 기대해볼 수 있는 이유다.
EVKMC 관계자는 “현대차나 기아 등의 전기차와 직접 경쟁할 생각은 없다”며 “소비자들은 결국 가성비를 찾는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가격이 대부분 5000만 원을 넘는데 소비자가 저렴한 전기차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중국산 승용 전기차는 국산 소형 내연기관차나 상용 전기차와 경쟁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싸면서도 출고가 빠르고 더 넓은 적재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현대차 포터EV는 보조금을 최대한 받아도 가격이 2000만 원대 후반이며 출고까지 10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화물용으로 출시된 현대차 캐스퍼 밴은 1300만 원대에 팔리지만 차체가 장링 EV3보다 작다.
김 교수는 “비야디(BYD)도 1톤 트럭을 출시하는 등 중국산 전기차가 연이어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며 “다만 승용 모델의 경우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기 때문에 중국 업계의 공략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