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선수 맞아?’
백석현(33·휴셈)은 과거 이런 물음을 달고 사는 선수였다. 몸무게가 140㎏까지 나갔다. ‘우리나라 골프 선수 중 최중량’ 타이틀은 늘 그의 차지였다.
그랬던 그가 다른 사람이 된 것은 2019년. 전역을 앞두고 ‘뭐라도 바꿔서 사회로 나가자’는 마음으로 독하게 다이어트에 매달려 80㎏까지 찍었다. 지금은 90㎏대인 백석현은 80㎏로 돌아가려 다시 살을 뺄 계획이라고 한다. “살을 빼니 정신도 맑아져 집중도 더 잘 된다”는 설명이다.
최중량과 거리가 멀어진 백석현이 새로운 타이틀로 골프 팬들의 앞에 다시 섰다. ‘빅 게임 챔피언’이다. 백석현은 21일 제주 서귀포의 핀크스GC(파71)에서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SK텔레콤 오픈(총상금 13억 원)에서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KPGA 투어 56번째 출전 대회에서 거둔 첫 우승이다.
상금은 2억 6000만 원. 올해 상금 랭킹 93위인 백석현에게는 우승 자격으로 확보한 투어 4년 시드가 상금만큼이나 값지다.
백석현은 아시안 투어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다. 태국에 살면서 2014년 인도네시안 마스터스 준우승, 2013년 월드와이드 슬랑고르 마스터스 3위 등의 성적을 남겼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국내로 눈을 돌려 2021년부터 KPGA 투어를 다시 뛰고 있다.
최호성과 함께 공동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백석현은 이글 1개와 버디 3개, 보기 3개로 2타를 줄여 2위 이태훈(캐나다)에게 1타 앞선 우승을 차지했다.
4번 홀(파5)에서 8m 이글 퍼트를 넣으면서 백석현은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나무가 가리고 있어 그린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친 210야드 아이언 샷이 일품이었다. 10번 홀까지 버디 2개를 더 보태 3타 차까지 달아난 백석현은 이태훈이 버디를 잡은 14번 홀(파3)에서 2m 파 퍼트를 놓치면서 1타 차 추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승부처는 16번 홀(파5)이었다. 이태훈이 보기를 범한 사이 백석현은 파를 지켜 2타 차로 여유를 되찾았다. 그린 뒤 러프에서 친 세 번째 샷이 반대편 러프로 갔지만 네 번째 샷을 잘 쳤고 파 퍼트를 놓치지 않았다. 18번 홀(파4)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고 세 번째 샷은 벙커에 넣어 큰 위기를 맞았으나 그린 뒤 벙커에서 친 네 번째 샷을 핀 한 발짝 거리에 붙인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막판 두 홀 연속 보기에도 백석현은 첫날부터 선두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트로피를 들었다. 악천후 탓에 이틀에 걸쳐 치른 1라운드에 9언더파로 불꽃을 일으킨 뒤 끝까지 불씨를 이었다. 4m 안쪽 퍼트는 볼이 아닌 홀을 보고 스트로크하는 이색 공략이 주효했다.
백석현은 "마지막 홀 벙커 샷은 인생 최고의 샷이었다. 1승에 그치지 않고 2승, 3승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낚시꾼 스윙’ 최호성은 4타를 잃어 7언더파 공동 11위로 마감했다. 대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최경주는 마지막 날 이븐파로 5언더파 공동 19위에 오르는 저력을 뽐냈다. 그는 4라운드 동안 한 번도 오버파 스코어를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