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발레는 백인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유럽 귀족 사회에서 시작한 발레 대부분의 무용수는 백인이었고, 이는 오랜 세월 변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흑인과 동양인 등이 발레계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높은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는 유럽 발레단 뿐 아니라 인종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최고의 발레단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조차 수석 무용수는 백인의 것이었다. 이전까지의 흑인 무용수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수위의 인종차별까지 감내해야 했다. 흑인 발레리나 레이븐 윌킨슨은 KKK단에게 쫓겨야 했고 결국은 발레단을 떠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그런 발레계에 미스티 코플랜드라는 빛나는 별이 등장해 모든 것을 바꿔 놓기 시작했다. 2015년, 미스피 코플랜드는 아메리 발레 시어터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가 됐다. 책은 코플랜드가 발레를 시작한 순간부터 수석 무용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다룬다.
코플랜드는 늦은 나이인 13세에 발레를 시작했다. 하지만 코플랜드의 발레 여정은 역경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잦은 재혼으로 인한 불우한 가정환경과 토슈즈도 살 수 없었던 가난에서 그녀의 발레 인생은 시작됐다.
15세에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입상해 발레 신동으로 주목받고 17세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 입단했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체형 변화는 발레리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거기에 흑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편견도 여전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플랜드는 피나는 노력과 연습을 통해 실력을 키웠고 결국 모두에게 인정받게 된다. 흑인이 단 한번도 주역이 된 적이 없었던 ‘불새’의 주역을 맡게 된 것이다. 계속해 성공을 이어나가는 그녀는 가수 프린스와 합동 공연을 펼치는 등 발레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공연도 펼쳤다.
소외계층이 발레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 쁠리에’의 설립도 지원하는 등 코플랜드는 자신의 영향력을 좋은 곳에 쓰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코플랜드는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발레리나 이야기’로도 만들어졌다. 코플랜드는 자신의 여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룬 성취에 울림을 느낀, 내 여정을 지켜본 모든 이들이 뭐든 늦게라도 시작할 수 있고, 다르게 보일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고 응원을 건넨다.
올해 3월 LG아트센터 마곡에서 열린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지젤’ 공연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리오페라발레단 354년 역사상 최초로 흑인 수석 무용수 기욤 디오프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호세 마르티네즈 예술감독은 “피부색 때문에 지명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자질, 카리스마와 잠재력이 그 이유”라고 전했다.
코플랜드와 디오프 외에도 무용계에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21년 발레리나 박세은은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 무용수 자리에 올랐다. 가장 보수적인 세계인 무용계에서 차별이 없어지고 있는 것에는 선구자인 코플랜드의 역할이 지대했다. 코플랜드는 “새로운 무용수들에게 조언하는 것만이 내가 하려는 전부가 아니다”라며 “불우한 어린이나 유색 인종 어린이들에게 발레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살아가는 동안 변화를 보지 못하더라고 메시지와 교훈을 전하고 싶다”는 코플랜드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2만 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