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신상 공개가 결정된 정유정(23)이 2일 포토라인에 섰다. 하지만 정유정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마스크를 눈까지 올려 쓴 모습으로 눈빛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2일 금정경찰서 등에 따르면 정유정은 검거 이후 가족으로부터 모자와 마스크 등을 건네받았고 이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과 송치 등을 위해 이송 때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이 때문에 신상 공개 피의자의 얼굴 공개 실효성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국민들은 실물과 크게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증명사진으로 정유정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금정경찰서는 경찰 내부 지침에 피의자 호송·송치 시 마스크나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사실상 경찰관이 제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제도는 흉악범의 이름과 얼굴 등을 공개함으로써 유사 범행을 예방하고 재범 위험성을 낮추는 등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행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
신상 공개가 결정되면 보통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고유정은 2019년 긴 머리를 이용해 얼굴을 가린 일명 ‘커튼 머리’를 하고 나와 신상 공개 실효성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바 있다.
이후 경찰은 법무부에 유권해석을 거쳐 피의자 동의가 있을 경우 머그샷(mug shot·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을, 동의가 없을 경우 통상 신분증(증명사진)을 신상 공개 사진으로 추가로 공개했다.
문제는 대부분 피의자가 머그샷을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신분증 사진이 공개되는 데 있다. 이 경우 신분증 사진과 실물이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피의자 호송이나 송치 시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려 문제가 됐다.
올해 초 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은 머그샷 촬영을 거부해 증명사진이 공개됐는데, 그의 실제 모습과 크게 차이가 났다. 하지만 송치 시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가려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신상 공개 결정 후 피의자 얼굴 공개에 소극적인 나라도 없다”며 “호송 시에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거나 머그샷 자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