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든든한 버팀목을 잃었습니다. A가 봉사하던 지역아동센터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찾아와 소리 내 울었습니다. A는 어린이집 교사를 꿈꾸며 아이들의 미래를 빛나게 하겠다는 빛나는 꿈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등굣길 캠퍼스에서 트럭에 치여 숨진 A양의 촛불 추모집회가 시작되기 전, 대학 본관 앞에서 열린 마지막 자유발언은 동덕여대 재학생들의 울음 섞인 애도로 가득했다.
자유발언에서도 역시 학교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학교 정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날 선 대자보 문구가 전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침통함 속에서 매 수업 중간 쉬는 시간마다 캠퍼스 곳곳에 울려퍼졌다.
12일 오후 8시 10분께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서 지난 7일 등교 중 교내 쓰레기장에서 내려오던 트럭에 치여 숨진 A 양의 촛불 추모집회가 열렸다.
고인의 유가족과 동덕여대 총학생회, 그리고 학생회 추산 1500여 명의 재학생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고인의 희생을 추모하는 한편 지난 6년 동안 학생들이 제기해온 교내 안전 문제를 묵인해 사고에 이르게 한 학교의 사과와 총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른 오후부터 학교 본관 앞에서 자유발언을 이어오다 오후 7시30분께부터 하나둘 집회 장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집행부의 질서 유지 하에 줄지어 집회 장소인 동인관 옥상 운동장으로 집결한 재학생들은 각자 촛불과 집회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집회 시작과 함께 이어진 무대발언에서 김서원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학교가 학교 구성원들의 요구를 들었더라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학교는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않고 보여주기식 대응으로 고인과 유족, 그리고 학생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인과 함께 공부했다고 밝힌 김송이 아동학과 학생회장은 “A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했고 어린이집 교사라는 멋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친구였다”면서도 “학생들이 고인의 추모공간을 만들고자 했을 때 학교 측은 ‘아직 모르는 학생들도 많고 그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유가족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지했는데 언제 유가족의 뜻을 들어보려 했는가”라고 호소했다.
이날 총학생회에 따르면 학교 측은 학생들의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긴급 공청회’ 개최 요구를 거부했다. 학교 측은 이날 ‘긴급 공청회 개최 요청에 대한 회신’을 발송하고 ‘추모기간 시행 중, 안전강화 추진 우선, 학생참여 안전강화위원회 조직 중, 수사기관 조사 중인 사안’ 등을 이유로 공청회 개최 요청을 수락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총학생회는 학교 측에 지속적으로 공청회 개최를 촉구할 방침이다. 김 총학생회장은 “총장실로 찾아가 공청회 날짜를 받아낼 것이며 총장실 앞 시위도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아한 소통방식…총장이 ‘직접’ 통화
추모집회를 개최하기까지 학생들과 학교 사이에 잡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집회를 예고하고 나선 학생들 중 일부는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의 전화를 받고 집회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했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이 총장의 전화를 받은 다음날인 이날 오전, 학교 측은 홈페이지에 호소문을 게시하고 “6월 10일 담화문을 통해 6월 말까지 애도기간으로 정해 교내 자체행사를 자제하도록 요청했으나 학생단체가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며 “학교 구성원 모두가 소통과 협력을 통해 실질적이고 제도적인 안전강화를 위한 방안 마련이 먼저”라고 설명했다.
총장의 개별 통화와 학교 측의 호소문 게시가 하루 간격으로 발생한 것에 대해 학생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단과대 학생회 관계자는 “학생들과의 통화에서 총장이 ‘집회 잘 마무리하라’고 말했는데 다음날 애도기간 집회 개최 자제의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재차 올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학교 측은 호소문을 게시한 것이 집회를 불허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사고와 관련해 학생회 입장문이나 민원을 많이 전달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추모제가 자칫 시위 분위기로 변하는 것이 우려된다"며 "애도 분위기와 맞지 않고 학생들이 많이 모이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로 호소문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또 총학생회에 따르면 현재 대학 본관 건물에 학생들의 출입이 제한된 상태다. 이날 집회와 관련해 시위의 양상을 우려한 학교 측이 보안 업체에 학생들의 출입 권한 해제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한 단과대 학생회 관계자는 “학생증을 찍고 들어가던 본관에 출입이 되지 않아 청소 미화원의 관리자 카드를 빌려 출입할 수 있었다”며 “보안업체에 문의했더니 학교 측에서 요청한 조치라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6년 동안 안전문제 제기…학교 묵인에 희생자 발생
6월5일 오전 8시50분께 동덕여대 재학생인 A양이 교내 언덕길에서 내려오던 쓰레기 수거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인근 고려대 병원으로 옮겨진 양 씨는 뇌사판정을 받고 7일 오후 7시20분께 끝내 숨을 거뒀다.
이에 경찰은 트럭을 운전한 학교 미화원 B(81)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입건했지만 고인이 사망함에 따라 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진술했으나 추가 조사 결과 B씨가 브레이크를 밟은 기록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와 해당 차량의 블랙박스 등을 확인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B씨는 사고 당시 음주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측은 사고 4일째인 8일, 홈페이지에 ‘차량사고 관련 긴급 안전조치 안내’를 게시하고 사고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으며 사고 재발방지 의지를 드러냈지만 학생들은 이번 사고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반발하고 있다.
총학생회는 학교의 게시글이 올라오자 즉시 성명을 내고 “학내 구성원들은 계속해서 학내의 안전하지 못한 공간에 대해 요구하고 외쳤다”며 “약 6년간 해당 장소와 관련해 학생들을 비롯한 교내 구성원들의 요구가 있었으나 학교는 해당 요구를 무시해 왔는데 이제 와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날 집회에서 발언한 사회과학대 학생회 관계자는 “수년 동안의 요청에도 바뀌지 않던 사고 현장에 단 3일 만에 계단이 설치되고 쓰레기장도 하루 만에 정리됐다"고 토로했다.
한편 학교 측은 사고 후 안전 강화를 위한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10일 동덕여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차량출입통제 및 안전조치 시행 △숭인관 쓰레기 집하장 이전 및 압콜박스 철거 △인권센터 특별상담 진행 △교내 긴급안전공사 시행 △애도기간 동안 교내 자체행사 축소 및 연기 △외부 전문가를 통한 교내 안전점검 추진 △안전강화위원회 설치운영 등의 내용이 담긴 공지를 게시했다.
김 총장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향후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내 시설을 긴급 점검하고 안전한 캠퍼스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