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위 규모인 한국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시장이 추가로 성장하려면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이 필수입니다.”
필립 반 후프 ING 한국 대표는 최근 서울파이낸스센터(SFC)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ESG 채권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한국 제조업이 친환경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ING는 전 세계 40여 개국에 임직원 5만 7000명을 둔 글로벌 종합 금융 기업으로 자산 규모가 1조 290억 달러(약 1331조 원)에 이른다. 1991년 11월 한국에 처음 진출한 ING는 기업금융, 국채, 증권, ESG 채권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2018년 외국계 금융사 중 처음으로 한국에서 ESG 채권 발행 업무를 시작했다. 국제기후채권기구(CBI)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ESG 채권 발행액이 57조 5000억 원으로 전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ESG 채권 발행액은 지난해 1110조 원에 달했다.
후프 대표는 “한국 ESG 채권 시장은 이미 일본을 앞서는 등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며 “탄탄한 성장 스토리를 가진 친환경 전기차, 2차전지 업체들의 ESG 채권을 해외 투자자들이 매력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2025년에는 한국의 ESG 채권 발행량이 현재보다 2배 정도 더 커지고 순위도 더 올라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후프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ESG 채권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점도 한국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로 꼽았다. 그는 “지난해부터 한국 주요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ESG 채권 발행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한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인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이 잇따라 ESG 정책을 강화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SG 채권을 발행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제품과 생산 과정이 모두 ESG 기준에 부합한다는 뜻”이라며 “한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후프 대표는 다만 국내 ESG 채권 시장의 성장 속도를 높이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부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ESG 채권을 발행할 때 친환경 생산 과정, 건전한 지배구조 등을 인증받아야 하는데 기준이 까다롭고 초기 비용도 많이 든다”며 “한국 ESG 채권 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세제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프 대표는 ESG 채권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미국·유럽 등 한국의 주요 수출 국가들이 속속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급 인사부터 ESG를 경영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후프 대표는 정부 지원과 기업의 적극적인 ESG 전략이 뒷받침된다면 한국의 ESG 채권 시장의 성장 속도가 세계 평균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에는 국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인 ESG 채권 전문가를 채용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후프 대표는 “암스테르담 본사에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을 위해, 한국에서(by korean, for korean, in korea)’라는 세 가지 메시지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며 “ESG 채권 발행을 위해서는 깊이 있는 사전 조율과 소통이 필요하고 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한국 전문가를 채용했다”고 전했다. 그는 “ING는 글로벌 ESG 채권 노하우를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 ESG 채권을 해외 투자가에게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