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국 원두 팔아 23년 후원…'6·25 용사' 희생 보은해야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돕는 신광철 아비시니카유니온 회장
1996년 참전군인 가정방문이 인연
성금으론 충당못해 생두 수입나서
사업 어려워도 매년 2억안팎 마련
장학금·집수리 등 용사·후손 지원
몸 바쳐 싸운 분들 끝까지 도울 것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도를 받은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 잘살게 된 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도 있겠지만 어려웠던 시절 그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 도와줬던 덕분이죠. 우리가 받은 것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올해로 23년째 참전국의 원두를 수입·판매하며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를 돕고 있는 신광철(사진) 아비시니카유니온 회장은 오랜 기간 나눔을 이어온 이유에 대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신 회장은 “1996년 5월 처음 에티오피아를 찾아 참전 용사들이 거주하는 코리안빌리지를 일주일간 돌아보는데 그들의 삶이 그야말로 처참했다”며 “한국전에서 아버지가 전사해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유복자,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아직도 병석에 누워만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후원이었다. 에티오피아가 1970년대 공산화가 되면서 한국 편에 섰던 참전 용사들이 오히려 핍박을 받는다는 소식이 1995년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코리안빌리지를 돕겠다는 손길이 전국에서 쏟아졌다. 당시 봉사 단체 로터리클럽에서 국제 봉사를 하고 있던 신 회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클럽에서 성금을 모아 에티오피아를 찾았고 일회성으로 끝낼 수 없다는 판단에 정기 후원 조직을 꾸렸다. 출범 초기에는 후원자가 2000명 정도 돼서 인당 1만 원만 내도 정기 후원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98년 외환위기(IMF)가 터지며 후원자가 200명으로, 또 50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신 회장은 돕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에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을 찾았다.


“그때 대사관 측에서 제안하기를 ‘미스터 신이 무역업을 하니 우리나라 원두를 수입해 팔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 커피는 정부 전매 상품으로 아무나 수입할 수 없었죠. 때마침 1999년 스타벅스가 문을 열며 ‘에티오피아의 특별한 맛과 향을 느껴보라’는 식의 캠페인도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40컨테이너(약 720톤)를 배정해줄 테니 수익도 내고 우리도 계속 도와 달라는 제안을 제가 받아들였죠.”




그렇게 에티오피아산 생두를 독점 수입하다 2001년부터 로스팅도 시작했다. 지인과 봉사 단체 회원들이 커피를 사주면서 참전 용사를 도울 후원금이 조금씩 늘었다. 하지만 잘 풀리지는 않았다. 신 회장은 “내가 장사를 못했는지 수익이 잘 안 났다”며 “당시 춘천에는 커피 수요가 많지 않았던 데다 2008년 외환위기로 달러가 폭등하면서 위기를 맞았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수출제한이 풀리며 저가의 원두가 밀려들어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신 회장은 여러 어려움에도 매년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가량의 후원금은 꼬박꼬박 만들어냈다. 신 회장은 “우리 원두가 가격 메리트는 부족해도 품질은 아주 뛰어나다”면서 “또 6월이 되면 우리 커피의 의미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분이 많아져 어떻게든 매년 도울 수 있었다”며 웃었다.


후원금은 주로 참전 용사들의 의료비, 후손들의 장학금, 긴급 생활 구호비 등으로 쓰인다. 집수리 사업도 하고 있다. 신 회장은 “처음 지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2000여 명 가까이 생존해 있던 분들이 지금은 74명만 남았고 그중 40분 정도만 건강하다”며 “뭐가 필요하냐 물으니 ‘사람다운 환경에서 하루만이라도 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다만 “부족한 자금 탓에 매년 4~10채 정도만 수리가 가능하고, 생존자 우선 원칙을 세우다 보니 수리 전에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은 생존자들을 마지막까지 돕겠다는 생각이다. 올해는 참전국 용사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신 회장은 “에티오피아뿐 아니라 터키·콜롬비아 등의 참전 용사를 만나며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들을 모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 회장도 맡고 있다. 여력이 된다면 후손들과 맺은 인연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는 바람이다.


“한국전 참전 용사가 세계 195만 명이라면 그들의 손자녀는 2000만 명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한국은 자신들의 할아버지가 몸 바쳐 싸워 승리로 이끈 나라이자, 지금은 세계 10대 강국이 된 자랑스러운 나라이죠. 이들이 한국에 가지는 호의를 계속 이어가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참전국 커피로 그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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