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매일같이 대립하는 여야가 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주제가 있다면 바로 내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민생 대책을 앞세우고 있다. 다만 각 정당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방향은 다르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치솟는 물가 안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역 의원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하락한 국제 밀 시세에 맞춰 적정하게 내릴 필요가 있다”며 식품 기업들에 라면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김기현 대표는 한 토론회에서 “당 대표가 된 후 처음 고위 당정에 갔는데 전기 요금을 올리겠다고 주무 장관이 보고해서 제가 책상을 치면서 안 된다고 했다”고 발언했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다. 3월 말 발표 예정이었던 2·4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률은 5월 15일에서야 한국전력(015760)공사·한국가스공사(036460) 적자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발표됐다.
이러한 가격 통제는 단기간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 근본적인 해결 대신 부작용을 초래하는 ‘포퓰리즘’에 해당한다. 라면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주요 원인은 농심(004370)·오뚜기(007310) 정도의 소수 기업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과점 구조다. 정부 여당이 해야 할 일은 보다 많은 기업의 가격 경쟁이 강화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함께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전기·가스 공급은 각종 산업과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이기 때문에 정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다. 그래서 합리적인 요금 결정 체계가 필요하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5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같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부 여당 비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가 대표적이다. 최근 민주당 지도부의 발언과 일정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22일에는 당 지도부가 1박 2일 일정으로 강원도 강릉을 찾아 시장을 방문하고 수산·관광 업계 종사자들과의 만남에 이어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정부 여당에 수산·관광 업계 지원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핵 폐수’ 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불안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피해를 막겠다는 것인지, 소비를 위축시켜 피해를 키우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처럼 여야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민생 대책의 본질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3월 한 정치인이 농담 삼아 했다가 파장을 일으켰던 발언의 일부가 문득 무게감 있게 느껴진다. “표를 얻으려면 조상의 묘도 판다는 것이 정치인 아닙니까.”